아침, 베란다로 나가보니 이삿짐들이 내려지고 있다. 어딘가 보니, 아래아래집이다. 순간, 기분이 싸해졌다.
여타 이사와 다르다. 짐이 이삿짐트럭에 넣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차장 한쪽에 버려지고 있다.
이미, 쇼파,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 책장, 화분들이 쌓여 있다. 그리고 사다리로 내려가는 짐은 폐기용 종량제 봉투들이다.
꽤, 오래전이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같이 탄 아래아래층에 사는 할머니가 갑자기 ‘젊음이 좋네, 젊을 때 맘껏 즐겨요’ 했다. 당시 이 말이 나한테 콱 꽂혔었고, ‘저는 이미 젊지가 않은 걸요, 즐기는 것도 다 상황이 되어야지요’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어쨌든 꽤 인상적이었고 이날의 대화를 어딘가 기록해 두었다.
간간이 마주치면 인사정도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는 마주치면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너무 빤히 쳐다본다. 그래서 불편함을 느꼈다.
아마 작년 무렵인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는데, 내가 버튼 누르는 걸 보고, ‘0층 살아요, 참 예쁘네, 이사 온지 얼마 안 되었나봐요’ 하시길래, 뭐라 말하기도 그래서 그냥 ‘네’하고 말았다. 정말 어쩌다 마주치니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마주쳤는데, 앞과 똑같은 상황이 또 재현되었다.
출근하던 어느날에는, 전철역 내에 있는 오뎅집에서 오뎅을 드시고 계신 모습을 봤다.
꽤나 깔끔하고 정정했는데, 그 무렵 할머니는 좀 야위었고, 이전 같은 깔끔함이 없었다. 그냥 할머니가 조금 이상해졌네, 나이 들어서 그런가, 란 생각을 했을 뿐이다. 할머니는 혼자 사셨고 혼자 사신지도 꽤 되었다.
그렇다. 나한테 새로 이사왔냐고 말하고 또 말했을때, 할머니는 치매셨던 것이다. 치매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비로소 알았다. 어디가 특별히 아퍼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그냥 나이가 드셔셔 그려려니 했을 뿐이었다.
언젠가부터는 어떤 남자분이 같이 살고, 같이 다니곤 했다. 대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인데, 동네에는 ‘수양아들’이라 말을 했나보다.
얼마전에는 그 집 대문을 마구 두드리고, 문 열어 보세요, 란 말이 한참이나 들렸다. 조금 지나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는데 아파트 입구에서 4명이 서 있었고, 마침 한 명이 통화하면서 ‘치매할머니네 와 있어요’란 말을 했다. 내가 강아지를 데리고 가니 그 일행 중 한명이 강아지를 아는 척을 하는데, 행색도 그러하고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최근에, 난 같이 사는 남자가 누군지 너무도 궁금했다. 공교롭게 그 남자가 그 집에 들어오는 첫날 나랑 같이 아파트에 들어서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뭔가 꾸민듯 하지만 어색한 모습이었고 전반적으로 이상한 분위기를 풍겼다. 당시엔 치매인지를 몰라서 그려려니 했는데, 치매란 사실을 알고 문득 걱정이 되었다.
오늘 경비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주변에 사기꾼들만 있었다, 고 하는데 치매 걸린, 혼자 사는 할머니의 일에 주변이웃이 어디까지 개입을 할 수 있는지, 개입이란 자체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할머니는 양로원으로 가셨다는데, 그것도 할머니가 직접 말한 것이 아니니 대체 언제, 어디로 간 지도 모른다.
주차장 한켠에 쌓여있는 할머니 물건들의 양이 꽤 된다.
베란다에서 바깥을 내다보면 그 짐들이 바로 보이는데, 그 풍경에 마음이 허해진다.
성함도, 나이도 모르지만, 자신이 쓰던 모든 짐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신, 이것이 자의인지 타의인지
조차 모르니, 할머니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내게 ‘젊을때 맘껏 즐겨라’란 말을 남기신 분.
하루종일 마음이 붕붕뜨고 착잡한 기분이다.
하나의 삶이 저무는 모습이 너무도 쓸쓸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