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재외생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y Dec 03. 2015

'내게 세상을 보여줘...'

1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잠시 머물다 가는 삶...

소속감은 행복의 요소 중 하나이다.  어찌 보면 불행하게도 난 어느 그룹이나 어느 장소에도 특별한 소속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한국을 떠나서 캐나다에서 살면서,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항상 난 여기는 내가 잠시 머무르는 곳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대학원을 졸업해서 '잠시' 정착하게 된, 내가 대학을 다닌 밴쿠버에서 3-4년을 살면서도 난 언제나 여기에 잠시 있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인생 파트너가 된 댐군을 2006년에 만나 사귀게 되면서도 처음 2-3년은 난 언제든 떠달 준비가  되어있다...라고 얘기했다.  3년이 지나 댐군이 떠날 때가 되자 난 갑자기 밴쿠버가 '홈(home)'이라는 생각이 들어버렸고, 댐군은 나를 위해 밴쿠버를 당신의 '홈'으로 정했다.  그래도 초기에는 난 아직 어리니까, 세상을 더 보고 싶어...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래서 나보다 훨씬 많은 세상을 본 댐군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내게 세상을 보여줘~~'라고...

[런던, 영국]


그 후로, 난 (주로 선진국을 다녔기 때문에 단편적이라 할 지라도) 많은 곳들을 봤다.  내가 못 가본 나라를 여행하기도 하고 잠시 살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다니면서 난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예를 들자면 난 내가 여행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다.  댐군을 만난 후 가게 된 나라를 따지자면 10개국이 넘는다.  


이렇게 떠돌이 인생을 살게 되면서 좋은 점은 소유욕이 많이 없어진다는 것.  왜냐하면 다 가지고 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가격은 좀 비싸더라도 내 맘에 쏙 드는 물건을 하나 사게 된다는 것... 그래서 그 아이만 데리고 다니면 되게 말이다.  

[바르셀로나]


안 좋은 점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주위에 신세를 많이 지게 된다는 것.  호주를 떠나 올 때는 캐나다로 옮길 수 없는 많은 물건들을 오프 라인으로는 한번 밖에 못 본 친구에게 왕창 떠밀고 왔다는 것.  캐나다에서 영국으로 떠날 때에도 친구들에게 왕창 떠맡기고 왔을 뿐만 아니라, 처분하지 못한 물건들 또 우리가 버리고 싶지 않았던 물건들을 본가(다행스럽게도 큰 전원주택이라... ) 지하실을 창고 만들듯 하면서 두고 왔다는 것.  

둘째로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좋은 점도 있지만... 가까운 곳에 친한 사람들이 없다는 건 사실 좋은 점이 아니다.

마지막으로는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어떤 성격의 사람들에게 이게 잘 맞을 지도 모르고 나도 사실 이런 삶을 추구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알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는 걸 바꾸어 말하면 언제나 잠시 머무는 상황이랄까.  정착하지 못하고 항상 잠시 있다 때가 되면 떠날 거라는 건, 뭔가를 사더라도 항상 잠시 쓰다 버릴 물건들을 사게 되고 모든 계획들을 단기적으로 세우게 된다는 얘기.


[보고타, 콜롬비아]


이런 삶이 20대 30대 초반에는 괜찮았다.  새로운 나라에 갈 때마다 새 토스터와 전자 케틀을 사고, 새 플러그에 맞추어 아답터를 구입하고... 새로운 나라의 동전들이 쌓여가는 것들을 구분해 비닐봉지에 넣어두고...


나이가 더 드니, 더 이상은 아키아에서 잠시 쓸만한 물건들을 골라 사는 데에 시간과 돈을 들이고 싶지 않더라.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범람 냄비라던지, 디자인도 기능도 좋아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믹서기라던지, 손때가 묻으면  묻을수록 더 멋져지는 커피 테이블이라던지... 이런 것들을 사고 싶다는 거다.


[파리, 프랑스]


댐군은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보게 해줬다.  같이 일하고 공부하고 여행 다니면서 우리 관계에 대해 더 많은 발전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가슴에 와 닿게 알게 된 건 난 떠돌이 유목민보다는 정착민 생활을 더 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난 10년 같이 떠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나의 이런 성향을 알지 못했겠지...)...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사랑하는 밴쿠버에서 예쁜 집을 구해 그 안에 내가 오랫동안 아끼고 좋아할 만한 물건들을 채워서 우리 가족이 다 같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타이틀에 걸린 저 사진은 런던 킹스크로스 역의 천장이다.  캠브리지 대학에 재학하는 동안 (2012-2014) 얼마나 여러 번 저 천장을 봤는지... 


이런 모든 경험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겠지만 난 이제 그만하고 싶다.  

'잠시 머물다 가는 삶...'



Kay ('쿨짹'이라고도 불려요)


PS: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댐군에게 한 말은 "Show me the world" 였다.  세상보다는 세계가 더 맞을듯... 

매거진의 이전글 [말레이시아] 쿠알라 룸푸르 정착 1주일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