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은 꽤나 즐거운 4년이었다.
지방 캠퍼스였지만, 가고싶었던 학교에 배우고 싶던 것을 학문으로 배운다는 즐거움.
친구, 선배, 후배 전공을 아우르는 동아리 사람들과 만나서 수업만 끝나면 다 같이 호프집으로 몰려가 과일소주 한잔 두잔 마시며 나에게 묻어있는 청소년의 태를 벗겨내는게 좋았고 이제 나는 성인이라는 거창함에 말도 안되는 허세를 부리는게 좋았다.
그렇게 졸업을하고 십몇년이 흐르고, 작년에 잠깐 일했었던 도서관 사서라는 직업에 매력에 푹 빠져
사서교육을 받는 평생교육원에 지원하기 위해 다신 꺼내지 않을것 같았던 성적증명서와 졸업증명서를 뽑았다.
다시금 합격을 기다리는 수험생이 되었고,
결과는 처참했다.
지원했던 두곳 모두 합격자명단은 고사하고 예비자명단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물론, 나의 성적이 대단히 훌륭한 편은 아니었기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기대라는게 한껏 커져있었던 모양이다.
충격이 꽤나 컸다.
탈락이라는 실패감과 코로나의 집콕 상황이 합쳐져 왠만해선 무너지지 않는 자존감이 무너지고 무력감이 찾아왔다.
학력은 삶의 해상도를 결정짓는 것이라던데,
나름 알록달록하고 예쁘게 칠해져있던 나의 대학시절 청춘이 이토록 흐릿하고 밍밍했단 말인가.
그때 공부를 좀 더 할것을.. 이란 후회보단 바래져 버린듯한 내 학창시절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컸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다시 공부라는걸 할 마음으로 얼마간은 들뜨고 설레이는 마음이었는데 그 들뜬마음이 혼자만의 설레발이었던 것 같아 민망스러워지기도 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 것은 어찌되었든 나의 주관적이고 지극히 자기합리화적인 입장이었고,
현실은 나보다 더 치열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공부에 매진할 가을이 기다리고 있을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성취되는게 없는 상황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이제 내년이면 내 나이의 앞숫자가 또 바뀌는데.. 이렇게 일궈놓은것 하나 없이 흰머리만 자라게 해야하는것인가..
"여보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지만 사회에서 보면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니야."
우울해하는 나에게 의외로,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남편의 무심한 한마디가 나를 움직였다.
극한 고난의 시련을 딛고 일어나, 피나는 노력끝에 자수성가한 어떤 사람들처럼은 아니더라도
아직 내 삶의 해상도를 높혀볼 기회는 남아있지 않을까.
풀HD+해상도는 아니더라도, 인생의 밝기정도는 좀 더 밝게 할수 있는 기회가.
그런 까닭으로,
영어책을 집어 들었다.
얼마 안가 시들어질 열정이라도,
오늘은 불태워볼 요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