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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배 Oct 08. 2021

늙는다는 것의 무례함

파트타임으로 종합병원 입구에서 발열체크하는 일을 얼마 전부터 시작했다.

지역에 큰 종합병원이 두 곳이나 있는 까닭에 내가 일하는 곳은 종합병원임에도 많이 낙후된 동네병원 느낌이 짙은 곳이다.


오래되었지만 종합병원이고 24시간 응급실에 선별 진료소도 운영하고 있어서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입구에서 발열 체크니 세상 간단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르신들의 방문이 꽤나 많은 덕에 업무 자체는 간단하지만 구구절절 설명할 일이 다.


출입 명부를 쓰는 곳인데 이곳이 접수처인 줄 알고 덥석 신분증부터 내미는 분,

방문 목적을 묻는 질문에 본인의 기저질환을 줄줄 읊으시는 분,

본인의 휴대폰 번호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 눈물까지 글썽이시는 할머니 등


다양한 어르신들의 다양한 돌발행동에 4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간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입원환자 보호자에 대한 통제가 까다롭게 이뤄지는데, 어르신들이 그에 대한 사정을 이해할리가 만무하다.


연휴가 지난 어느 아침.

할머니가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들어오셨다.

전 날 응급실로 들어와 입원한 환자의 보호자인 듯했다.

"할머니, 병원 어디 가세요? 병실엔 보호자 출입증이 있으셔야 출입이 가능하세요~"

"무슨 소리야 나 접종도 두 번 다 받았는데!!"

"코로나 검사는 받으셨어요?"

"받았지!! 여기 여기 한번 봐봐 문자온거!!"

하며 본인의 휴대폰을 냅다 나에게 던진다.

"검사 어디서 받으셨어요? 보건소문자가 없는거 같은데요"

"서울에서 받았어!!"

문자을 뒤적이다 음성판정 문자를 찾았다.


앗 이런, 너무 날짜가 지난 음성판정 문자다.


"할머니, 검사 다시 받으셔야 할거 같은데 우선 접수처에서 보호자 출입증 받으셔야되니까 접수창으로 가서 절차를 다시 여쭤보시겠어요?"


그때부터 할머니의 손이 떨리더니 화가 차오르시는게 느껴졌다.

왜 출입증을 안주는지, 이걸 알아서 나한테 줘야지 왜 내가 이걸 신청하고 받아야 하냐며 결국 1층 접수처가 떠나가라 소리소리를 지르며 가방을 집어 던지시고는 억울함을 강하게 표출하셨다.

할머니의 분노에 당황하고 불쾌해진 접수처의 직원의 말씨도 곱게 나올리 없었다.

할머니는 보호자인데 출입을 통제 당했다는것 자체에 엄청나게 화가 나있었고, 이미 화가 잔뜩 나서 접수처의 직원의 설명은 귀에 들리지 않는듯 했다.


차근차근 따져보면 화낼일도 아니건만 거절당했다는 부분에서 오는 실망과 당황스러움 할머니는 거침없이 분노를  쏟아다.


다음 날 출근하니 그 할머니가 다시 1층 외부 바닥에 앉아계셨다.

알고보니 보호자출입증을 발급받기 위해 다시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병원 직원이 다가가 물으니 할머니는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식들은 다 멀리 사는데다 도와주려하지도 않고 찬바람만 쌩쌩분다며 남편은 입원해있는데 본인은 뭐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서러워 죽겠다며 연신 눈물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그렇게 울며 하소연 하는사이 검사결과가 음성으로 나왔고 할머니는 어제의 소란을 피운게 부끄럽고 미안하셨던지 수줍게 웃으며 보호자출입증을 목에 걸고 입원실로 올라갔다.

 

할머니도 그렇게 소리치지 않고 조금만 더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대방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접수처 직원도 할머니에 동요되지 않고 조금만 상냥하게 찬찬히 절차를 설명해줬더라면,

어제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눈물을 훔치며 들어가는 할머니를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그들을 늙었다고, 잘 모른다고 무시하고

그들은 우리를 괄시한다고, 무시하고...

어른들의 무지와 우리들의 무시가 서로를 향한 끝없는 무례함으로 계속 상처를 주고 받는것은 아닐까 하는.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

늙어 간다는것.

누구에게나 예외 없는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본의 아니게 서로가 서로에게  이토록 무례구나 하는것을 느꼈다.


나도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 속에서

과연 나는 무례지 않 어르신이 될수 있을까.


점점 빨라지는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는데 한계를 느끼더라도,

그래서 그 무지함에 부끄럽고 당황스럽더라도

무례해지지 말고, 화내지 말고

그럼에도 친절하게

늙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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