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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배 Oct 12. 2021

미니멀리즘 흉내내기.

남겨진 콩콩이

미니멀리즘 살림살이 책에 푹 빠졌다.


굳이 거창한 미니멀리즘 지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결혼 10년째 되다보니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살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이책 저책 보다보니 이 "비움의 미학" 에 꽂혀버리고 만 것이다.


미니멀리즘의 기본은 비우기 인지라

나도 좀 비워보자 싶어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이 집에 이사온지 2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사오기 전에 분명 한 트럭은 정리하고 버리고 온 것 같았는데...

그새 또 개미같은 나의 습관 제 못주고 

리 자리마다 온갖 물건과 옷으로 가득버렸다.


하루는 옷 수납장 위치변경과 옷정리를

하루는 아이들 방 장난감 정리함을 정리했다.

옷을 많이 사는 편에도 옷장의 미스테리는 우리집이라고 비켜가질 않는다.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은 없었다.

아이들 옷은 더 심각했다.

사촌언니들과 친한 이웃 언니들이 많은 덕분에 아이들 옷은 많이 물려입는데 한 서너집에서 물려받다보니 이 중에서 옷을 추리는것도 꽤나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그 시간의 소요됨이 싫어서 받아논 채로 한계절이 지나고 있었다.


이제 9살 7살이라 소꿉놀이나 인형놀이같은 장난감들은 이미 시시해져 그녀들의 관심 밖에 밀려난지 오래다.

나의 물욕이 대를 이어가는지 버리려고 꺼내놓자 버리지 말라고 성화다.

이사와서 한번도 안가지고 놀았잖아.

더 어린친구들 가지고 놀게 중고로 팔자~

팔고 엄마가 슬라임이랑 클레이 사줄게

하니, 또 금방 설득돼 버린다.


아이들방에선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의 장난감과 교구들과 스케치북과 인형들이 쏟아져나왔다.

둘째아이 돌 선물로 받았던 장난감 정리함은 수납력이 엄청나서 자잘하고 쓸데없지만 아이들에겐 꼭 필요한 장난감들을 정리하기에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수납력으로 이토록 불필요한 물건들을 품고 있었단 말인가.


  칸이 다 찰 정도의 잡다구리한 물건들을 정리하니 쓰레기가 엄청나다.

제로 웨이스트와 미니멀리즘은 뗄레야 뗄수 없는데 어딘가에 쌓여있을 플라스틱 산의 높이를 높히는데

우리집에서 나온 쓰레기들도 한 몫할 생각을 하니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 다시는 쓸데없는 물건은 사지 않으리.

커다란 김장봉투에 장난감과 종이들을 쓸어담으며 몇번이고 다짐한다.


그렇게 한바탕 쓰레기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가니 훨씬 방이 훤하고 깨끗하다.

장난감 정리함도 당근마켓에 올려 다른분께 저렴하게 판매했다.


이 방이 이렇게 밝은 방이었구나. 흐린날씨 속에서도 아이들방은 어쩐지 더 빛이 나는것 같다.


몸은 좀 피곤하지만 기분만은 세신을 한듯 깔끔하고 개운해서 잠도 푹 잘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거실.

역시나 상쾌한 마음으로 일어난 나의 시야에

콩콩이 인형이 박혀들어온다.

마치 애나벨처럼.....


아니 이게 왜 아직도 여기 있지?!!

하는 나의 외침에 막내딸이 콩콩이를 끌어안으며 버리지 말라며 지키고 나섰다.

아기때 가지고 놀다가 커서는 방치해놓더니

훵해진 방에서 남겨진 인형을 보니 새삼스레 소중하게 느껴져 이것만은 지켜야겠다 싶은 마음인가보다.


결국 어제 그 전쟁같던 비움의 미학과 철학의 실천속에서 저 콩콩이 인형은 살아남았.


마음같아선 당장에 내다 버리고 싶지만,


어느날 갑자기 마음의 준비조차 할 시간 없이 본인 의지도 아닌 비우기를 "당해" 버린 아이를 위해, 콩콩이 인형 하나쯤은 기꺼이 남겨두기로 한다.

얼마간은 막내딸의 소중한 친구가 되어줄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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