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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배 Dec 30. 2021

이 이야기의 다음 페이지

무섭지만 눈 똑바로 뜨고-

이윽고 하루 뒤면 40이다.


세상에ㅡ.

나에게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숫자의 나이 표를 달게 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왜인지 나이 있는 사람들의 억울한 변명 같아서 나까지 거기에 편승하고 싶지 않다. 정말 나이가 들어버린 것을 실감하는 것 같아서 두렵다.


오히려 서른 살이 되던 때는 세상 무덤덤했었다.

결혼 준비로 스물아홉 연말은 꽤나 바쁘게 지냈고

나이를 먹는다는 서운함보다는

앞으로 꾸리게 될 신혼생활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더 컸기에 다가올 30이란 숫자가 크게 무겁고 버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30에서 40.

그 10번의 1년 동안 이룬 것이 얼마나 많았는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조약돌 같이 말갛고 예쁘게 자라게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나라는 사람을 가족에게 아깝지 않게 녹여내며 지내온 시간이다.


하지만 이토록 다가올 또 다른 10년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 평범하디 평범한 희생이 아까워서 일까,

나라는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던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하찮게 느껴져서 일까.


아마도 이렇게 아침드라마 같은 신파 같은 이유들은 아닐 것이다.


난 서른을 좋아했던 것 같다.

서른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감. 그 시원함.

조개같이 다물어버린 내 안에서 자존감을 끝없이 바닥으로 치달았던 10대와

너무 뜨거웠지만 엉성하기 짝이 없어서 일도 사랑도 다치기 일쑤였던 20대를 지나

나의 30대는 비로소 따뜻하면서 시원한 바람이 부는, 평안이었다.


격정 드라마보다 잔잔하고 소소한 시트콤을 찍어대며 오손도손 옹기종기 하루하루 내 옆에 있어준 나의 반쪽과 나의 분신들과 재미지게 살았기에 비로소 내 인생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내 인생 가장 재미진 부분,

그 페이지의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가

아까운가 보다.


"엄마는 40 되는 게 너무 싫은데 어떡하지?"

"엄마, 그냥 몇 시간 지나는 거뿐이야.

난 10살 돼도 아직 2학년인데?"


하, 큰딸래미가 또 이렇게 가볍게 한방 먹인다.


나이를 먹으니 뭘 생각해도 한 겹 두 겹 두껍게 생각하게 된다.

그에 비해 내 딸의 생각은 이 얼마나 가볍고 투명하단 말인가.

덕분에 나의 고민도 조금은 무게를 덜게 되는 기분이다.


볼드모트란 이름을 입에 담지도 못했던 그들처럼 나도 아직 '마흔'이라고 소리 내 말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지만, 어쨌든 그게 나라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던, 글자에 불과하던

나는 나일 테니..

여전히 아이돌을 좋아하고(샤이니 뽀레버),

예쁘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고,

잘 키우지도 못하지만 초록의 것들을 좋아하고,

누군가의 생각을 읽고, 가끔 내 생각도 끄적이는 행위를 좋아할 것이다.


무섭지만, 눈 똑바로 뜨고 넘겨보기로 한다.


내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하지만 어쨌든 맥주는 마셔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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