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에서 주말농장 치고는 꽤나 크게 농사를 지으시는 시부모님은 항상 겨울이 오기전 화분에 파를 한껏 심어 가져다 주신다. 겨울 내내 조금씩 뜯어서 요리할때마다 쓰라고 주시는 건데, 결혼한지 10년차가 되도록 항상 제대로 키워본적이 없다.
물을 너무 자주 줘서 과습으로 죽이거나, 물 주는걸 너무 까먹어서 말라죽이거나 줄 둥에 하나다. 그러다 파가 잘 자라지 않는 것 같다 싶으면 나의 신경과 관심은 온통 거기에 머무른다. 난 약간의 강박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에 꽂히면 내가 원하는 쪽으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이다. 인터넷으로 파 키우는 법을 검색해서 동향인 집은 오후에는 볕이 잘 들지 않으니 오후에 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서 볕을 쬐어 주고 물은 되도록 오전에 주며, 수돗물은 받아서 하루 두었다 주는 식으로 우선 할 수 있는 방법들은 모두 시도해본다. 어쩌면 나는 그저 죽어가는 초록을 보고만 있기엔 무책임한 것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해보았다고 위로하고 합리화시키며 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전전긍긍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올해도 역시나처럼 우리집 파는 백발의 노인처럼 하얗게 말라버린채 베란다 한칸에 춥고 외롭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미 죽어버린 화분에 나도 더는 신경이 쓰이지 않아 관심은 주지 않은채 지내던 어느 날, 화분에 다시 파란 잎이 돋아난게 보았다.
백발같은 잎사귀 뒤로 솟아난 씽씽한 잎.
어머, 이게 왠일이래
안그래도 파한단 값이 만원가까이 치솟아 마트에서 파를 들었다 놨다 하다 결국 까짓거 파는 그냥 넣지말고 요리하자 하고 지내던 찰나에 저 짧디 짧은 파란 잎이 어찌나 반가워 보이던지...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는 내 흰머리 같았던 저 힘없이 쳐진 마른 잎사귀들을 쏙쏙 뽑아주고 나니 여기에만 봄이 왔나 싶게 초록초록해져버렸다. (내 흰머리들도 뽑아내면 저렇게 개운해질까.) 추운 베란다에서 꽁냥거리는 나를 보고 큰 딸도 옆에서 이 추운겨울에 다시 잎이 나는지 신기해하며 손을 돕는다.
물을 주고 일주일 뒤에는 더 씽씽해져 있었다.
솎아낸 화분에 흙이 다 젖도록 물을 흠뻑 주었다. 잎에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힌게 개운하다. 일주일 뒤에는 좀 더 자란 모습을 보니 그렇게 기특할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나와는 다르게 어머님은 참 무심하고도 살뜰하게 초록들을 살피신다. 흙이 좀 말랐다 싶을 때쯤 물을 주고, 겉잎이 시들었나 싶을 때 솎아 내주신다. 나 같이 들들볶듯 못살게 구는 강박에 가까운 보살핌보다 어른들의 무관심에 가까운 보살핌이 그것들을 더 푸르고 싱그럽게 하는 양분이 아닐까싶다.
다시 기운을 차린 우리집 파가 더 푸르게 자랄수 있도록, 조급해하는 마음은 버리고 응원하는 마음만을 담뿍 주면서, 천천히 하지만 바른 속도로 자라나 언젠가 우리 집 베란다에도 싱그럽고 살가운 초록의 기운이 가득 피어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