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1학년이 된 아이들에게 일기를 쓰라고 했다.
쓰기 훈련도 되고 두고두고 읽으면 일기처럼 그렇게 재밌는 게 없다고 꼬셔가며, 약간은 반 강제적으로? 일기쓰기를 시켰다.
좋아하는 짜장면이나 스파게티를 먹은날은 최고의 하루가 되는 1학년이 쓰는 일기는 맞춤법은 고사하고, 구성도 듬성듬성 거칠지만, 그 거칠음이 나름 귀엽고 특색있다.
처음엔 숙제 검사하듯 띄어쓰기나 맞춤법 글씨체도 지적했는데 이렇게 하다간 일기쓰기를 정말 숙제처럼 생각해서 부담감을 느낄까봐 쓰게만 하고 지도는 하지 않는다.
교과 수업으로 일기쓰기를 배운 3학년은, 평소의 FM다운 성격처럼 하루일과를 전부 적는다.
아침은 뭘 먹었고, 오늘은 어떤 수업을 했고, 저녁엔 뭘 먹었는지..
일기 초반엔 의욕이 과하게 넘쳐 그날 배운 수학개념까지 적어놓아서 이럴필요 없다고 좀 내려놓고 가볍게 써도 된다고 말해줬다.
사춘기의 입구에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 열살 언니인지라 자신의 일기를 보면 날 철천지 원수 보듯 해서 대놓고 보지는 못하고, 몰래 몰래 보고 안본척 한다. (훔쳐보는 일기가 왠만한 베스트셀러 뺨치게 재미진 법)
가끔(보다 꽤 빈번하게) 엄마에 대한 불만을 적어 놓는데 부정적 감정표현을 잘 못하는 아이라 이렇게 라도 분출을 하는것 같아서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딸래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다면야 더 뜯고 씹고 맛보고 하는것쯤이야.
한 두달이 지나자, 일기쓰기는 학생들만 해야하는 숙제가 아닌데 왜 아이들에게만 강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볼펜을 쥐고 손글씨를 쓰니 글씨체는 엉망이고 손가락도 얼얼해졌다.
"쓴다" 라는 행위를 싫어하진 않지만 이상하게도 그 씀을 위해 타자를 치거나 펜을 잡고 손가락을 움직인다는게 어쩐지 낯부끄러웠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무언갈 쓴다는게 허세같고, 있는척 하는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머릿속에 생각은 많지만 글로 풀어내려면 겨우겨우 한가닥 뽑아내는게 다 였다.
내가 글쓰기 자체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괜한 부담을 짊어지우고 있었던것 같다.
생각보다 일기는 잘 써졌고, 더 쓰고 싶었고, 하루하루 빼먹고 싶지 않아졌다.
일상의 소중함은 어떤 특별한 하루에서가 아니라 이런 자잘한 날들을 쌓아가며 만들수 있는 것이었다.
한권을 다 채우면 아이들과 서로의 일기중에 재밌는편 골라 보여주기면서 같이 깔깔거려야지-.
이런게 일기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