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열쇠, 인사.
아닌 밤중에 초콜렛을 얻을 수 있는
오전 8시 20분.
5, 6학년 등교 출입구 쪽 발열 체크기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 후 아이들 동선에 맞춰 기기의 위치를 살짝씩 바꿔본다. 햇살이 너무 강한 날은 반사되는 햇빛 때문에 얼굴인식이 더뎌져서 적당히 그늘진 위치로 바꿔놓아야 등굣길의 혼잡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
8시 30분 이제 아이들이 삼오삼오 모여들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초등학교 방역 도우미일을 시작하고 등굣길 발열체크를 하면서 처음에는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내 아이들 친구를 대하듯 안녕~ 하고 가볍게 인사를 했었다.
그러다 교문에 들어오는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며 안녕하세요, 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교장선생님의, 그야말로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를 "어린 이"로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에 내 안에서 큰 울림이 일었었다.
그 후로 나도 이제 초면이면 아무리 내 자식뻘로 어리더라도 존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저학년 아이들도 아닌 이제 곧 중학교를 향해가는 초등학교 최고참 형님들 5, 6학년 등교 출입구에서 발열체크를 해야 했을 때는 살짝 부담스러웠다.
이제 막 사춘기로 접어드려는 질풍노도의 파도에 몸을 맡기려고 준비하는 그들.
그들이 입고 다니는 무채색 옷처럼 무덤덤하고 어두운 표정 일색이며, 삼삼오오 무리 지어 있을 땐 사포처럼 거친 단어를 친밀의 수단으로 주고받는 그들에게 내가 과연 인사를 할 수 있을까.
슈퍼 내향형 인간인 나에게는 안녕하세요 그 다섯 글자를 입 밖으로 꺼내기가 그렇게나 마음의 숙제였다.
하지만 역시나 걱정은 사서나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가볍게 안녕이라 하는 인사보다 약간은 격식 있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던 것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일까.
아이들은 예상외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밝았다.
내가 인사를 건네기 전에 먼저 해맑게 인사를 건네는 친구, 거친 육두문자를 뱉으며 장난치며 들어오다가도 나를 보고 흠칫 놀라며 부끄러워하며 인사를 하는 친구.
꺄락 꺄악 신나게 떠들고 웃으며 들어오는 친구들.
키와 피지컬은 나보다 훨씬 큰 아이들이었지만, 아이들은 역시나 아이들일 뿐이었다.
그 후로 한 학기가 넘는 기간 동안 아침마다 아이들과 만나는, 아이들과 한 명 한 명 인사하는 그 시간이 꽤나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
그중 아무리 해도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분명 나의 인사를 들었을 텐데, 못 들은 척. 옆 친구와 오늘의 급식 메뉴에 대한 이야기만 하며 날 본체만체하고 지나가는 아이.
나도 굴하지 않고 매일매일 인사를 건네자 어느 날은 본인도 모르는 새에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답례를 하더니 이제는 항상 웃으며 예쁘게 인사해준다. 안녕하세요 라며.
"인사는 그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야. 한 번에 안 열릴 수는 있겠지만, 언젠간 열리게 돼 있어."
내가 항상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어릴 때 그러했듯 나의 아이들도 누군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했다. 어쩌면 부끄러웠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지만 단지 부끄럽다는 이유로 인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의 구실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무관심으로 본체만체하던 그 소녀에게 내가 답례와 미소를 얻었듯이, 내가 먼저 인사를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들에 대한 굉장함, 그 뿌듯함이 가득한 배부른 느낌을 나의 아이들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함께 있을 때면 내가 먼저 나서서 인사하는 모습을 열심히 보여줬다.
나의 작은 솔선수범 덕분인지 큰 아이는 꽤나 인사성 밝은 아이로 자랐다.
(아직도 부끄러움이 중추신경을 지배하는 작은아이는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어느 날 동네 어르신이 날 붙잡더니
"이거 그 집 인사 잘하는 딸내미 갖다 줘요. 인사를 어찌나 예쁘게 하는지 내가 다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하시며 초콜렛 한 상자를 건네주셨다.
초콜렛을 싫어하는 큰 아이였기에 그 초콜렛은 내가 맛있게 먹었지만(죄송해요, 어르신) 어르신이 주신 마음은 큰 아이에게 또 하나의 뿌듯함으로 남았을게 분명했다.
이렇게 인사는 매력적이다. 안녕하세요 다섯 글자 한마디로도 굳어져 있는 분위기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 수 있고, 경직된 얼굴에서 살그머니 미소를 띠게 할 수도 있다.
물론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무관심한 얼굴로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그러함에도
나는, 그리고 나의 아이들은 반갑게 인사는 건네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타인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경쾌한 용기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밝은 인사로 열 수 있는 마음의 열쇠가 많은 사람이 되었으면.
그렇다면 또 어느 날 분명히 뜻밖의 초콜렛 같은 달콤함으로 돌아올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