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 내 걱정을 주먹만 한 감자에 담아 심어버린 것이 벌써 3개월이 지나, 순이 올라오고 줄기가 두꺼워지고 꽃이 피더니 잎이 누레지며 수확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감자꽃이 피고 지는 동안 학교 텃밭에도 다른 것들이 잔뜩 심어졌다. 학교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텃밭이었지만 꺼멓게 갈색투성이던 땅에 채도가 서로 다른 초록들이 가득하니 내 마음이 그저 좋았다.
그렇게 예쁘고 싱그러운 초록이 가득해져 가던 날들에도 마음까지 싱그러울 순 없는 일들은 늘 생겨나는가 보다.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 시림을 알고 있음에도 가까이서 챙겨줄 수 없는 일들이 나에겐 제일 그러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힘든 일이 이리저리 생기는 걸 지켜보는 내 마음도 함께 시렸다.
어떤 위로는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게 제일 큰 위로가 될 수도 있지만, 지켜만 봐야 하는 순간에는 무기력하고 답답하고도 미안하다.
그런 마음들이 어느 한쪽에 고이고 고인다.
6월부터 찌는 듯이 덮다가, 물을 일부러 이렇게 틀었는가 싶게 세게도 비가 오는 날씨가 이어졌다.
감자 캐는 기준이라는 하짓날이 다가오는데 비는 이어지고, 감자를 캐야 한다는 걱정 어린 잔소리들이 계속 들려왔다.
학교에 야심 차게 심은 것이니 만큼 학교 아이들과 함께 캐보고 싶었고, 그렇게 진행하려니 하지는 훌쩍 넘겨 7월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이미 난 걱정이란 감자를 땅에 심어봤기에, 걱정이란 감자처럼 조막만 한 것이라 앞서서 걱정하진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만큼 땅속에서 감자는 더 씨알을 키웠을 것이다.
또 한 번의 세찬 비가 지나간 다음날,
드디어 주먹보다 커졌을 감자를 캤다.
언제 비가 왔나 싶을 정도로 뜨거운 날씨였지만, 흙속에 연한 껍질을 빛내며 숨어있는 감자를 발견해 내는 일은 나도, 아이들도 꽤나 즐거웠다.
그렇게 집으로 가져온 감자들.
비와 걱정과 근심거리를 이겨내고 자란 감자를 이제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분명 캘 때까지만 하더라도 동골동골, 귀엽게 단단하던 감자들이 며칠 지나자 썩은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내린 비의 수분이 감자에 고여있었고 그게 채 마르기 전에 캔 것이 문제였다고 했다.
어느 한구석에 고여있던 나의 우울감처럼
이 감자에도 비가 고여버렸구나.
걱정이었던 감자는 우울의 감자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구나.
썩은 감자를 열심히 골라냈다.
다른 감자도 덩달아 썩지 않도록.
그리고 나의 마음을 우울에게 잠식당하지 않도록.
다시 단단하고 예쁘고 귀여운 감자들이 남았다.
더 이상 썩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햇볕이 내리쬐지 않는 바람이 시원하게 통하는 곳에 두고 어딘가에 고여있을 물기를 날려주어야겠다.
당신과 나의 마음 어느 구석에 고이는 줄도 모르고 고여있던 물기들도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고 보송보송하게 말려주고 싶다.
더 이상 우울하지 않게, 자주 들여다보며 썩은 것들을 꼼꼼하게 골라내 주고 싶다.
당신의 아린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며 당신만큼 아파하며 마음 쓰고 있는 내가 있다는 걸 당신이 알아주면 좋겠다.
그래서 비로소 우리의 우울이라는 감자를 잘 말려서 다시 기쁜 마음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너무나 기분이 상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