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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배 Mar 14. 2024

이 많은 돌은 자꾸 어디서 나오는지

텃밭 갈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두 달의 겨울방학이 끝났다.

유치원에선 제일 큰 형님이었을 테지만 다시 귀요미 1학년이 된 신입생들과

새로 바뀐 반에서 새로 만나는 친구들과, 새로 만나는 선생님들과 어떻게 하면 친해질지 연신 눈동자를 굴리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 재학생들의 조금은 설레고 긴장할 새 학기의 시작이다.


버석버석 말라버린 스산한 잔가지와 낙엽이 널려있던 학교 안 텃밭에도 어느새 따끈하고 기분 좋은 봄볕이 내려앉고,

발자국 하나 생기지 않을 정도로 깡 깡 얼었던 흙도 어느새 녹아 밟을 때마다 포근한 발자국이 남는다.

이렇게 부드러운 흙이 되면, 이제 텃밭을 시작해야 할 때다.


6월에는 학교 아이들과 감자 캐기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감자가 90일간 자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또 그러려면 3월 말에는 씨감자를 흙 안에 자리 잡게 해주어야 하는데,

또 그러기 위해서는 겨우내 답답하게 얼고 막혀있던 흙에 숨통을 불어넣어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흙을 덮고 있던 낙엽과 마른 가지들을 긁어모아한 곳에 정리하고,

퇴비를 적당히 흙과 섞어 삽으로 뒤 섞어 준다.

 발로 누르며 깊게 박은 뒤 읏차 하며 들어 올려 밑의 흙과 퇴비와 공기가 한데 어우러지도록 해준다.

표면에 말라 있던 흙들이 밑에 있던 흙과 섞이면서 진한 흙색으로 변한다.

마치 온통 회색빛이었던 겨울 풍경에 봄이 찾아와 자연이 색색을 찾아가는 것처럼 흙의 색도 선명해진다.


방학 내내 늦잠과 게으름으로 뭉쳐있던 근육이 삽질과 함께 깨어나는 기분이다.

그렇게 흙 파는 농기계가 된 것처럼 삽과 물아일체가 되어 움직인다.

파고 들어 올려 섞고, 파고 들어 올려 섞고.

이 작은 루틴이규칙적인 리듬이 되어 금방 몸에 열이 오른다. 아마도 내일이면 근육통이 찾아오겠지만 정해진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게 힘이 든다기 보다 신이 난다.

이 리듬이 깨지지 않으면 좋을 텐데...

나의 흥을 깨트리는 것이 있으니, 바로 돌멩이들이다.

분명 이 텃밭에 감자와 상추와 토마토와 그런 것들을 심었었는데

왜 해마다 밭을 갈 때마다 돌멩이들이 삽이 턱 턱 걸릴 정도로 발견이 되는지..

이 주먹만 한 돌들은 대체 언제 어디로 와서 흙속에 박혀 있는 것인지..

이쯤 되면 돌멩이도 텃밭에서 자라는 게 틀림없는 것 같다.


돌밭에서 나무호미로 밭을 갈던, 호미자루가 부러져 버렸던 콩쥐에 비하면 손에 들리 삽은 최첨단 농기구이겠지만, 삽질 세 번마다 걸려대는 돌부리는 그야말로 "돌부리"처럼 일의 진행을 더디게 한다.

(이럴 때 콩쥐를 도와준 황소가 나타나주면 좋을 텐데)

그래도 콩쥐는 외롭게 혼자였지만, 우린 동아리 한 팀이기에 우리의 발목을 잡는 돌부리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까꿍 하며 나오는 돌멩이를 골라가며, 함께 떠들어가며, 웃어가며, 흙속에 떠들썩한 봄의 기운을 불어넣어주기를 멈추지 않는다.

덩어리처럼 굳어 뭉쳐 있던 흙들이 어느새 해실해실 풀어져 부드럽고 도톰해졌다.


넓지 않은 학교 텃밭에 일손도 많아 생각보다 밭 갈기는 한창 재미있어 질 때쯤, 끝이 난다.

쿰쿰한 퇴비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지고, 수분기 잔뜩 머금은 진한 갈색의 텃밭이 벌써부터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내가 뼛속까지 텃밭 동아리 회원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다.


이제 텃밭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났으니, 올해도 갖가지 초록으로 텃밭을 가꿔보아야겠다.


이곳에, 이 흙에

올해는 어떤 것들이 자라게 될까.

또 어떤 벌레들이 우리를 힘들게 할까.

학교 아이들이 텃밭의 작물을 보고 얼마나 신기해할까.


새 학기의 설렘이

우리의 텃밭에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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