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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배 Jul 08. 2024

감자찾기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감자 꽃이 하이얗게 피고

감자 줄기와 잎사귀가 반짝이는 녹색으로 한창이었다.


어느 주말이 지나고

텃밭 물 주기 당번이었던 회원님의 다급한 SOS.

"감자가 이상해요!! 왜 이렇게 다 시들었죠?"

분명 금요일까지는 작은 숲이라 해도 될 정도로 울창한 줄기들이 싱싱하게 뻗어있었더랬다.


하루아침에 이게 무슨 일인가.

운동장 한켠에 있는 텃밭이라 아이들의 신나고도 과격한 공놀이의 희생양이 된 것일까.

아니면 동네에 어느 때 가끔 드물게 나타난다던 전설같이 전해지던 멧돼지가 내려왔던 걸까.


텃밭 관리 3년 차지만 전문농사꾼은 아니었기에

하루아침에 이별을 통보하고 떠나버린 연인에게 버림받은 사람처럼 초록을 잃고 시들어버린 감자를 바라보는 우리는 그저 멍하니 땅만 바라볼 수밖에....

는 없었기에!


당장에 전문가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돌아온 답은 너무나 간단하여 격앙됐던 분위기가 한 번에 가라앉았다.

"아, 이제 감자를 캘 때가 됐나 보네요."

이럴 수가

아직 하지는 한참이나 남았는데?


하지.

여름감자의 수확의 절대 기준.

감자의 명칭이 괜히 하지감자가 아닐 터였다.


이렇게 수확시기가 빨라지니 마음도 바빠졌다.


관찰대회를 열어야 한다.


학교 안의 텃밭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나마 초록을 접하고 생태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전교생에 비해 텃밭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어 모두가 체험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동아리 사람들끼리 머리를 맞대 고민한 것이 이 관찰대회였다.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든 텃밭임에도

신입생 1학년 아이들을 비롯해 몇몇 아이들은 아직도 학교 안에 뭔가가 자라고 있다는 걸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더 와서 보라고.

지금 이 초여름 계절에 작물들이 얼마나 푸르고

우거지게 울창하게 하루가 다르게 초록을 뻗어내는지 느껴보라고.

대회를 준비했다.


대회 내용은 대략 이렇다.

아침 등교시간 교실에 들어가기 전 동아리 회원들(관찰도우미)을 따라 우리 학교 텃밭에 무엇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관찰한다.

방울토마토와 토마토는 잎사귀부터 다른 점.

시금치의 싹. 목화가 자라나는 모습

가지는 줄기도 보랓빛을 띄고 있으며

고추는 방아다리 위로 줄기를 뻗어 올린 다는 점.

마트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자라는 모습은 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조곤조곤 정성껏 설명해준다.

그리고 각자 느낀 점을 자유롭게 그리거나 써서 제출하면 끝.


아이들의 작품은 하나하나 모두 기발하고 웃음이 나고 사랑스럽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뽑는다.

그것이 특별상.

텃밭에 맨 처음 자리 잡은 터줏대감 감자를 캘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감자 캐기는 점심시간을 이용한다.

학생 한 명당 동아리 사람들 2인에서 3인이 한조가 되어 아이를 돕는다.


하지가 다가오는 즈음엔 땡볕에 무더위가 기승이다. 그래서 감자 캐기가 상이 아니라 벌칙 아니냐는 농담도 하지만 아이들은 꽤나 진지하다.

감자 캐고 싶어서 급식을 10분 만에 먹고 온 아이.

본인은 감자를 싫어하지만 엄마랑 언니가 좋아하니까 캐겠단 아이.

특별상을 못 받았지만 구경이라도 하겠다는 아이.

아이들은 장갑을 끼고 감자가 숨어있을 법한 흙을 살살살 손으로 파헤친다.


그렇다면 그곳엔 감자가 있다.

마치 보물 찾기를 하는 것처럼.

감자가 나올 때마다 신나서 환호성을 지르는 것은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이른 봄 냉장고에 외면당하던 감자를 걱정을 비료 삼아 심었던 동아리 사람들의 환호성이 학교 운동장을 가득 채운다.

마치 미운오리새끼가 백조로 변한 모습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다들 감격에 겨워한다.


다들 같은 마음으로 감자를 반가워한다.

이쯤 되면 감자 캐기가 아니라 감자 찾기 인 것 같다.

감자꽃이 영양분을 다 빼앗아 갈거라 했지만

크기도 모양도 다 제각각인 감자들은

그게 감자인 것만으로도

거기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이들에게 각자 한아름씩 감자를 담아준다.

감자를 받아 든 아이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다.

아마도 감자를 들고 집에 들어가는 아이들의 마음은 월급봉투 들고 들어가던 그 시절 아빠들의 마음처럼 든든하고 자랑스럽지 않았을까?


감자 캐기의 시간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늘의 짧은 이벤트가 오랜 추억으로 남아주길 하는 바람이다.


그 어느 흐린 봄날, 쭈굴쭈굴 이게 정말 내가 샀던 감자인가 싶게 볼품없고 보잘것없어 누가 볼까 부끄러워 슬그머니 꺼내 조심스레 심었던 그 감자들이.

이렇게 조약돌처럼 동그랗고 둥그렇게 멋지게 변신하며 자라난 감자를.

우리가 다 함께 신나고도 반갑게 감자찾기 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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