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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배 Apr 17. 2021

설레발의 어떤 결과.

인도커리의 날

그날은 인도음식의 날이었다.


오전시간에 잠깐 방역도우미 일을 하는 초등학교의 급식메뉴가 인도커리였다.


아침 일찍 나가 공복에 점심시간까지 일하고 오는 나에겐 그 커리 냄새가 어찌나 치명적이었는지.

내 당장 집에 가는 길에 마크니 커리를 사다가 해먹어야겠다 했지만 그날 마트에는 온통 오뚜기카레 뿐이었던 터라 실망한 채로 집에 돌아왔다.


그 뒤로 몇번이나 만들려고 했지만 도통 기회가 되질 않았다.


주말아침 드디어 커리를 만들 타임이 왔다.


며칠을 기다린 마음이 급해 손이 먼저 움직였다.


버터에 닭고기를 볶아야 하는데 괜스레 커져버린 마음의 기대감이 오바액션을 만들어, 버터를 너무 많이 잘라냈고, 우유도 예상보다 많이 부어서 소스같은 농도대신 국인지 찌개인지 모를 묽은 농도가 되어 버렸다.


이놈의 설레발은 언제나 기대심을 한껏 비웃으며 평소에 할수 있는 재량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어버린다.


치킨스톡으로 밍밍한 간을 채우고, 보골보골 끓여내 어찌어찌 완성을 했지만 이건 내가 며칠을 고대하며 그려왔던 커리가 아니었다.

살금 풍겨야 하는 버터향은 너무 느끼 했고 벌컥 부어버린 우유덕분에 색깔도 흐리멍덩.


이미 만들면서 스스로에게 실망해버려 후닥닥 밥에 비벼 먹어 버리고 씁쓸해 하던 중, 아이들이 무슨냄새냐며 관심을 보였다.


평소에 새로운 메뉴에 대해 친절한 아량이 없는 아이들인지라 이번에도 다르진 않겠거니 허며 인도커리라는건데 평소에 먹던 카레랑 좀 다를거야 먹어볼래? 하며 밥과 함께 주니,


" 엄마, 이거 너무 맛있다!! 맨날 이거만 먹을래 "

" 엄마, 앞으로 카레는 이것만 먹고 싶어!! "

" 한그릇 더 먹을래 "


아닌 밤중에 이게 왠 칭찬폭풍인가.


국읗 두번만 연속으로 내놔도 왜 같은걸 자꾸 또 주냐며 질색팔색하던 아이들이 저녁에도 이 "커리"를 드시겠다며 점심, 저녁 메뉴를 하나로 통일하여 주부 최대 고민인 저녁 뭐먹지의 숙제를 이다지도 가뿐하게 해결해 주었다.


나에겐 닝닝했던 커리를 이토록 맛있게도 먹어주다니.


깨끗하게 비워진 냄비를 닦으며

사는건 정말이지 별게 없구나 하다는걸 다시금 느낀다.


나의 지나온 날들중엔 앞선 기대감으로 일을 그르친 경우가 무수히도 많다.

괜한 힘과 긴장이 들어가 유연할수 있는 상황에 더 뻣뻣해지고, 그렇게 기대보다 미약한 결과에 항상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자책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런 설레발이 망친 결과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도가 되고, 만족고 행복해할 경험이 될수도 있다는 걸 새삼,


인도커리를 만들고 먹으며 느낀


거창하지만 이 또한 별거 아닌,


오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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