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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아기 청둥오리까지도...

독립의 또 다른 이름은 자신의 생계를 자신이 책임진다는 것.

by 그냥살기

여기는 내가 청승 떨고 싶을때면 자전거를 타고 나와 잠시 머물다 가는 탄천변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다 물가로 시선을 돌리니 때마침 아기 청둥오리 세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처음 본 청둥오리도 아니었건만...

오늘따라 참 다르게 보이는 청둥오리가족


"가족인줄 어떻게 아냐고?

아따 따지지마 따지지마..."

초록색 물 이끼가 잔뜩 낀 곳에서 연신 주둥이로 뭔가 뜯어먹고 있는 다섯 마리의 청둥오리떼가 지금 여기 내 눈 앞에 있다.


내 나이 마흔 하고도 셋이나 되었지만..나란 인간은 호시탐탐 부모님 재산을 노리는 철없는 생명체인데 반해

지금 내 눈 앞 아기 청둥오리들은...제 각각 홀로 제 입에 들어갈 초록색 이끼를 열심히 뜯어대고 있다.


어미 청둥오리처럼 보이는 오리는 그저 자기 입에 이끼를 뜯어 넣는데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 각자도생인가?

오리의 세계에도 각자도생의 바람이 불어댄 것일까?

2016년의 한국처럼...

오! 노!...그럴리가 그럴리가 절대 그럴리가...

무식한 소리는 이쯤에서 접어두자...더 얘기 하다간 무식이 탄로날테니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태계에 인간만큼 오랜 보살핌의 시기를 필요로 하는 생명체가 또 있을까?


독립된 개체로 홀로 스스로의 몫을 다할 수 있을 때까지 무려 20여년 가까이를 필요로 하는 인간들..

그럼에도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개소리를 짖어대는 특정인간 부류들의 인간 만물영장론의 일반화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듯.

만약 동물들이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애진작에 인간들에게 이런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닥쳐, 이 애송이 같은 것들아..."

"부모 등골 빼먹는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20년 가까이 부모의 보호와 지도 편달을 받아야만 하며, 단 한번뿐인 풋풋한 부모의 청춘을 앗아가 버리는 도둑 아닌 도둑이 되는 양육의 단계를 거쳐야만이... 그나마 인간노릇 하기 시작하는 너희 연약한 인간들은 그저 겸손하게 죽치고 살라고"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단 상상을 잠시 해보았다.


마치 아기 청둥오리가 주둥이를 놀려 내게 정신차리라고 얘기하는 듯이 느껴졌다.
잠시지만 그 생각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부끄러워 하는게 오래 갔으면 좋겠다.

나는 워낙 단세포라 금세 또 망각하고 대강 구걸해서 이 상황을 면피하려고 노오력(노력) 할까봐...그러다가 내가 영영 구걸하는 것에 익숙해질까봐...겁이 난다.


엄마한테 한동안 구걸해서 생활비를 얻어 냈는데...그럼에도 두어달을 버티지 못했다.

이러다 알량한 내 자존심에 금이 쩍쩍 갈 것 같은데...

종이짝처럼 얇아진 삭은 내 자존심이 산들바람에 닳아 전부 흩어지기 전에
이발하다 죽더라도 일을 다시 재개해야 되겠다.


아기 청둥오리들을 보니 돈이 없어 죽을 것 같은게 아니라 쪽팔려 죽을 것 같다.


저 약해 보이는 귀여운 오리들도 각자 몸은 각자가 간수 하는데...

먹이도 혼자 찾고 뜯고.

잠시 날개를 펄럭이는가 싶더니 이내 날아올라 근처 물가에 다시 자리를 잡고 유유자적하게 노니는 청둥오리떼들.

거참 부럽네...


교통사고후 이약 저약 챙겨먹고 생계를 위한 일을 모두 내려놓고 대출로 연명하다 엄마에게 SOS까지 했지만 이 몸은 아직도 땅을 딛고 서 있든, 드러누워 있든 어떤 자세를 취해도 술에 취한듯 어지럽고 기운이 없다.


이제는 교통사고 이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다.

이 몸에 적응하고 살 수 밖에 없겠지.

100% 예전으로 돌아간다는건 죽은 아버지가 되돌아오시는 것 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이니...


아파도 적당히 일하며 이 몸에 맞는 일을 늘려 가야겠지...만.

슬프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괜찮다.

살만하단 걸까?


그렇지만 이를 악물고 다시 출발해 보아야겠다.

잦은 대출도 더는 싫고, 엄마에게 손 벌리는 것도 죽기만큼 싫으니까...슬슬 이발소 일을 시작해 봐야겠다.

죽더라도 작렬하게 이발소에서 일하다 죽으면 그게 더 멋지니까...

곧 죽어도 멋있는 척은..
외관은 쥐뿔도 멋 없는데..

그러고 보면 곧 죽어도 멋있는 척 하고 싶다는건 제대로 해석하면 멋이 없다는 반증일지도...


아니 이러면 내가 너무 가엾잖아.

그냥 제 멋에 사는 것쯤으로... 그러니까 객관적 시선으로서의 멋이라기 보다 주관적 시선에서의 "제 멋" 이라고 해두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루 비참해질꺼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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