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고착
언제부턴가 고무줄 바지를 주로 입게 됐다.
늘 입고 다니던 스키니진은 옷장을 대신한 책장 한켠에 모셔 두기만 하고 아직도 언제 다시 입게 될지 기약이 없다.
이것저것 살을 빼보려 무던히도 노력해 봤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원래 먹던 식사습관 패턴으로 돌아오게 되니까 고비를 넘기지 못한 체중이 전혀 빠질 기미가 안보이는 거다.
그런 이유로 늘 고무줄 바지나 고무줄 치마를 즐겨 입고 있다.
작년 여름 내 체형보다 약간 넉넉한 마 바지를 사서 초가을까지 편하게 애용 했었는데
올봄 칙칙한 겨울 옷을 벗고 마땅한 옷이 없길래 일단 사이즈 부담이 적은 예의 그 고무줄 마 바지를 입고 선약이 있는 장소로 나갔다.
아무래도 자전거를 타다보니 바지 무릎이 삐진 주둥이 마냥 댓발은 나와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약속장소에서 나를 반기는 센터장님께서 한 말씀 하신다. "태연씨 절바지 입고 왔네" 하시며 웃으신다.
좀 창피했다. 언제나 말끔한 고급 정장 차림인 센터장님 앞이라 그런건가 무릎나온 내 바지가 창피해서 한참이나 신경이 쓰였다.
사람들이 모이기로 한 그날의 장소가 아구찜 집으로 정해지면서 좌식식당에 한참을 앉아 있다 보니 내 바지꼴이 우습게도 집에서 입는 바지처럼 무릎 모양새가 더욱 튀어나와 버렸다.
일면식이 없는 일행까지 합류하게 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중 한분께서 유독 내 바지에 걸리셨는지 저 츄리닝 입으신 분은 여기 왜 온거냐며 시비 아닌 시비를 계속 거셨다.
그 어른께서 모임자리에 오시기 전에 이미 그분에 대해 충분한 얘기를 들었던 터라 그분의 언행에 걸려 넘어지진 않았지만 음식을 먹는 내내 온 신경이 바지로 갔다.
"아니 이 바지가 어딜봐서 츄리닝이고 절에서 입는 옷이냐고 대체 어딜봐서"
암튼 그날 모임 마칠때까지 화제거리가 떨어질만 하면 내 바지가 다시 화제거리로 도마위에 올랐었다...얼마전 그런 일이 있었다...
오늘 요가하러 길을 나서려는데 마침 만만한 고무줄 마 바지가 손에 잡힌다.
당연히 입고 나섰다.
요가원 엘리베이터 속 거울에 마 바지가 비치고 있다.
아! 웬걸 이렇게 보니 절에서 명상할때나 절할때 입는 펑퍼짐한 절바지나 츄리닝처럼 보여지기도 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더군더나 무릎이 제대로 나와서 열에 대여섯은 그리 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입고 있어도 이건 마 바지야 라는 의식이 앞을 가리고 있을 때와
눈으로 직접 모양새를 보고 나니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구나.
의식의 고착화를 경험한 내 마 바지..아무래도 조만간 버리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