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해도... 성질이 더러워도...아파도 괜찮아.
오늘은 내가 평일 알바로 하고 있는 돈까스를 만드는 날이다.
어쩌다 보니 중년이 넘은 지금에 비정규직 알바 인생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지만, 이 일이라도 할 수 있어 조금은 감사한 맘도 들고 이 일도 점점 숙달되며 요령도 생기다보니 요즘 들어선 타성에 젖어 일하는 건 하닌가 하고 나를 돌아보는 여유도 생겼다.
들쭉 날쭉하는 내 몸의 지병이 심해질땐 작은 일에도 온갖 이름을 갖다 붙이게 되며 일하는게 더욱 고되진다.
오늘도 여느 평일처럼 알바를 끝내고 밀가루 반죽이 달라붙은 옷을 입은채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한쪽다리가 무릎 위까지 없으신 아저씨가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없는 한쪽 다리를 대신해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나무로 만든 보조기 두개를 겨드랑이에 끼고 성한 한쪽발로 깨금을 뛰며 몇발짝 뛰다 멈췄 섰다. 자전거를 끌고 가던 나는 아저씨 뒤에서 아저씨가 가시길 기다릴까? 아니면 지나쳐 가야 할까? 잠시 망설이게 됐다.
자전거를 끌고 아저씨를 앞지르자니 아저씨의 마음이 순간 염려 됐다. 내가 만약 아저씨라면 불쾌할 것 같았다. 두 다리가 멀쩡하면서 한 다리로 가는 자신을 급하게 제끼고 가려는 비장애인을 향한 비정함을 느끼실 것 같기도 했고, 한편으론 내 관념이 그리보는거지 아저씨가 그런 생각을 하실리가 만무하다는 생각도 했다. 짧은순간 동시에 두가지 생각이 오갔다.
내 관념속 장애인이란 이미지는 뭔가 안되 보이고 측은하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기가 어려운 한참이나 부족한 존재로 인식되어 있다. 내 속을 더 들여다보니 내가 장애인이 되면 어쩌나 그럼 다 끝이라는 관념이 꽉 들어차 있다.
건방지다는 말을 들을까봐서 장애인을 배려하는듯 하지만 사실은 신체적 장애가 없는 내가 우월하단 생각을 품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몸이 아파 몇년동안 일을 멈추고 쉬었던 적이 있다. 여전히 다 나은것은 아니지만 몸 상태에 맞춰 일을 줄이고 최대한 몸을 배려하며 일을 하려고 한다.
너무 안 좋은 때를 제외하고는 나름 덜 힘든 일을 찾아 꾸준히 일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는 일이 너무 싫었고 마음도 많이 아팠었다.
그 시기의 경제적인 면의 해결은 가족과 사귀던 남자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고 지냈었는데 그럴수록에 의지심이 더 깊어만 갔었다.
온전히 아니 완전히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열망이 쌓여갔고 그럴수록에 마음의 시름도 깊어 졌었다.
내 아버지는 첩첩산중 시골에 아무도 탐내지 않는 선산과 전답을 가지고 계시는데, 나는 이제나 저제나 혹시나 내가 아프니 내 살길을 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시지 않을까? 하며 목을 빼고 지내 왔었다.
왜 아픈 나를 더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지 않는지 가족들 원망을 많이 했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봐도 떡고물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반은 포기하고
아직도 절반은 포기하지 못한채로 혹시 아버지 돌아가시면....유산이 있을지도.... 하는 기대를 하기도 한다.
부끄럽다.
하지만 난 이런 사람이다.
청빈한 사람이고 싶지만 아쉽게도 나는 극빈에 가까울지도...ㅎㅎ
나는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니는데,
자전거를 타다 보면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의도치 않았지만 기분좋은 생각이나 감사함, 만족 고마움 이런 것들과 연관되는 것들이 많이 연상되며 올라오곤 한다.
아무래도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다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듯 싶다.
한참 좀 지난 일인데, 그날도 여느날처럼 목적지를 향해서 페달을 열심히 밟던 중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누군가 내 눈이 안 보이는 대신, 내 팔 다리가 없는 대신, 내 귀가 들리지 않는 대신, 혹은 말할 수 없는 대신에 20억쯤을 준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잠시 망설였지만 내 육신을 돈과 바꾸고 싶진 않았다. 아니 바꿀까 말까 조금 고민했지만 그건 명백히 아닌 것 같았다.
이쯤 생각이 흘러가면서 번뜩 정신이 돌아오고 보니 "난 그럼 이미 엄청난 부자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이미 천금이구나!
내가 참 어리석게도 내 눈에 보이지 않을때 내 귀에 들리지 않을 때에는 나만 힘든 것처럼 느낄 때가 대부분 이었는데.
오늘 다리가 없어 불편한 아저씨를 만나고 보니 내가 내 몸에 깊은 은혜로움을 느꼈다.
내가 내 몸을 보살필 수 있고 그러고도 힘이 남으면
그땐 다른이를 도울 수도 있다....내겐 보살핌을 못 받았다 느껴 상처로 남은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보살핌 받는쪽 보다는 줄 수 있는 쪽의 여유를 갖고 싶다.
자꾸 칭얼대며 의지처를 찾아 헤매는 발걸음을 멈춰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지병이 있어도 나는 이미 부자이고, 내 일은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신체가 부실하지만 그래도 건강한쪽에 속하는 사람이니까. 다소 부정적이고 유치하고 정의와는 담 쌓고 살고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제멋대로이고 감정적이지만 그렇지만 괜찮다. 더는 의지처를 찾아 헤매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