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히 전도 몽상

화를 내면 뭐가 좋디

by 그냥살기

백내장 수술을 앞둔 아버지가 맘에 걸려 평상시보다 아버지께 더 자주 문안을 여쭙는 요 며칠이었다.

지방에 사시는 아버지는 당뇨와 혈압이 있으시지만 병원 처방약 외에 따로 식이요법이나 운동을 하시진 않는다. 매번 몸이 더 나빠지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운동을 권하지만 언제나 잔소리로 들리시나 보다.

자신의 병에 대해 관심 없음은 물론이고 더 안 좋아지시기 전에 평생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말씀이라도 드릴라치면 이내 짜증을 내고 마신다. 짜증 정도면 양반이다.

대놓고 화를 내는 게 태반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러 마음 내서 아버지를 챙기려 해도 자꾸만 물러서는 마음이 올라온다.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불안감이 크셔서 그렇겠거니 하고 더 다가서려 해보지만 그깟 수술이 뭐 대수냐며 되려 화를 내신다. 안 해도 된단다...

옥신각신 그러다가도 이내 다시 아버지께 다가가려 마음을 열어 보지만 나도 아버지의 화가 버거워 아버지를 모른 척하고 싶어 진다.
어쩌면 아버지 자신도 왜 화를 내는지 모르지만. 실은 수술에 대한 두려움에 더 화를 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는 티끌만큼의 추억도 쌓인 게 없긴 하다.

단지 한 공간에 사는 폭력과 폭언이 전부인 것 같은 무서운 아저씨라는 느낌만이 남아 있다.

요 며칠 아버지께 더 가까이 다가가려다 물러서는 나를 보며 사람 관계와 화에 대한 객관적 관찰을 하게 됐다.

나는 가족 안에서도 넷이나 되는 형제와 부모 조부모와도 터놓고 말을 해본 기억이 없다.
물론 그들과 마음을 나누는 일은 더더군다나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기질 탓인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도 대부분 혼자 동네 언저리를 싸돌아 다니며 놀곤 했다.

처음 나온 사회생활 같은 무리의 여직원들과는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성년 이후로도 가족 대소사 같은 자리를 끔찍이도 싫어했었다. 여전히 싫다.ㅎㅎ

그런데 이제와 나를 보니
내가 착각하고 살았다는 걸 뒤늦게 사 알게 되었다.
이번 아버지의 화를 통해 느끼게 된 것이 있다면 내 곁엔 좋은 사람이 없고 그래서 내가 힘들고 괴롭다고 생각했었던 것은 순전히 나의 진한 전도 몽상(착각)이었다는 거다.

내가 다른 사람이었대도 예전의 나 같은 사람 곁에 오고 싶지 않았을 거 같단 생각이 든다.

무뚝뚝하고, 자기 위주로 사고하고, 남이 먼저 날 봐주기만을 바라고, 내게 무조건적으로 맞추기만을 요구하며 언제든 방어와 공격할 준비를 갖춘 채 날이선 칼날을 가슴에 품고 사는데, 그런 사람 곁에 누군들 오고 싶었으랴...

사람들은 너나없이 사랑받고 존중받기를 원하는 존재들인데, 나란 사람은 피해의식에 쩔어 언제든 화낼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춘 사람이었으니. 누군들 좋아할 수 있었을까?...

결국에는 사랑받지 못한 결핍으로 사시나무 떨듯 떨어대며 가시를 세우다 보니 저절로 사람이 가까이 다가올 수 없게 만들어 버린 거지.

나란 존재를 도무지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그 답답함과 울분으로 가슴이 메말라 사랑도 같이 말라비틀어지고, 친밀한 관계를 원하면서도 도무지 관계 자체가 싹이 틀 수가 없는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던 거지.


사랑에 목말라 관심에 목말라 그토록 원하던 사람의 따스한 정을 꿈꿨었지만...

신이 었다면 몰라도... 내 곁에 있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을 테니까. 지랄 맞은 미친개처럼 짖어대며 톡 쏘아붙이는 내게 친구는 과분했지. 과분하고 말고... 있는 게 더 이상한 거였겠지...

"나는 친구가 없어..."

"내 곁엔 사람이 없어..."

"사람들에게 나는 이용가치가 없나 봐."

"다 개소리였구나!"

자연의 법칙은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사람들이 가까이하지 않을 땐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얼굴에 대놓고 인상을 잔뜩 쓰고 우울한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던 나. 과거 나를 아는 누군가에게 되묻지 않아도 내가 잘 안다. 거울도 필요 없다.
그게 내 모습이었으니까.

왜 몰랐을까?
가까워지고 싶으면 화를 낼게 아니라 관심과 존중으로 만나야 하는 거였는데, 왜 그땐 몰랐을까?

화를 내면 멀어지는 거였는데... 왜? 아버지를 무서워하면서도 아버지를 닮아 있었던 걸까? 자꾸 보다 보니 닮았으려나...... 그렇겠지 그런 거겠지, 뭐. 어쩔 수 없이 그리 된 거겠지...

나도 화내는 사람 곁에 가기 싫은데... 무서운데...

화내는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화를 내는 대신 "나랑 놀자 나도 너희들이랑 같이 놀고 싶어" 다시 돌아간다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화를 내는 대신 "나는 ~~를 원해 들어줄 수 있겠니?" 이렇게 부탁할 수 있기를...

화내는 그 마음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래도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대... 화내는 자는 스스로의 몸에 스스로 기름을 들이붓고 불타오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화를 수단으로 사람을 멋대로 뒤흔드려 하다가는 그 화에 내가 먼저 불쏘시개가 돼버리고 만다. 내가 그랬었다. 그랬었네... 그랬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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