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었지~~
부끄럽지만 서른 살 무렵의 나는 같잖은 욕심으로 사장이 된다면 직원일 때보다 나의 가치가 올라갈 거란 생각을 했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이발소 주인의 동업 제안을 덜컥 받아들이고 작은 동네 이발소 공동 사업자로서 이발소 사장 노릇을 한 적이 있었다.
규모도 아주 작고 개업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이발소였는데, 그놈의 직원 아닌 사장이 뭐 대수라고.
나는 꽤나 우쭐대며 나대고 다녔다.
가게 주인 입장에서야 직원 구하기도 어려운 데다 자기가 투자한 비용까지 일시에 절반이나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지만.
머리끝까지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있고, 자존감이라곤 0도 없던 내가 그 일에 말려든 건 순전히 나의 어리석음에 나 스스로 걸려 넘어진 일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자연인 김태연으로는 어디에서도 인정받을 수 없고, 부족하고 모자란 것 투성이라 남들 앞에 나서기 부끄러운 인간이란 생각을 스스로 하던 애정결핍 최고봉 환자 앞에 동네 이발소 사장이란 타이틀은 마치 신분 상승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조금은 성공한 듯한 이미지를 부여하기에 적당히 안성맞춤이라고 여기기까지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 당시 가게에서 알게 된 손님과 연애도 시작했고, 결혼까지도 약속했었지만, 그때의 내 연애 상대가 운이 좋았던 건지,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암튼 둘 다 운 좋은 걸로... 그와 나는 극적으로 헤어지고 말았다.
아마도 내게서 짙은 의지심의 그림자를 발견한 거였으리라 추측해 본다.
나를 감당할 만큼의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고, 이런저런 저울질을 해보아도 손해라고 생각됐는지, 감당하고 싶을 만큼 사랑하진 않았던 건지, 한때의 솟구치는 성욕구였었던 건지, 뭐가 됐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정히 떠나갔다. 헤어진단 말도 없이 말이다.
그가 내게 고백했던 수줍던 사랑의 속삭임 따위를 엿먹이기라도 하듯 정말이지 너무나 매정하게 가버린 그놈...ㅎㅎ
내가 원해 이별한 것이 아니다 보니 근 2년간을 술만 처먹으면 그놈에게 전화질을 해댔다. 그렇게 하면 불쌍해서라도 다시 돌아와 주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감에... 술을 퍼먹는 날은 늘어만 갔다.
하지만 서른다섯이 넘어 절에서 만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나와 헤어져 준 그에게 고맙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암튼 내 곁에서 일찌감치 떠나 준 그에게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낮은 열등감을 딛고 일어서려 선택했던 비뚤어진 동업은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상사중재원에 동업 파기를 원하는 소송까지 내고야 말았다.
떠난 놈을 사귀기 전의 남자 친구가 나 대신 소송을 대행해 줬었는데, 그 친구 덕에 더 많은 손해를 줄이고 적당히 손해 보는 선에서 폐업신고를 할 수 있었다.
그 무렵 나를 버리고 간 그놈을 못 잊어 술을 먹거나 우울증 약을 먹고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했다.
오랫동안 사귀어 오던 남자 친구를 버린 벌이었을지도...
어린날에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는 일그러진 정신세계 속에 사는 것 같다. 겉으로 보이기엔 멀쩡한 듯이 보이지만 상처받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세상을 비뚤어지게 왜곡해서 보기 십상이다.
부모에게서조차 무관심과 무시와 경멸을 먹이 삼아 성장한 아이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희한한 일이지.
내 마음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서.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고 울어 젖혔다.
전생에 죄가 많아 나만 이래 힘든 거냐며 신을 원망 하기도 해보았지만, 언제까지나 남 탓만을 하고 있기만 해서는 죽을 때까지도 괴로울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단 사실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알고 보면 다 내 탓인걸..
내 탓이고 말고.
그 당시 나의 우울은 시간이 지나도 옅어질 줄을 몰랐고, 죽음으로 이 괴로움을 끝내리라 다짐했던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럼에도 목숨줄이 길었던 건지 아직까지 살아 남아 사십 줄을 넘어 오십 줄을 바라보고 있다.
삶이란 게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삶을 대하는 적절한 순리를 몰랐던 나는 감당키 싫은 일들이 올 때마다 부정하고 뒷걸음질 치기에 바빴다. "싫어 싫어 싫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쭉 이런 삶을 살 바에야 죽어 버리겠어"
이런 우울이 날마다 반복됐었다.
시간이 흘러 흘러 부처님의 보배로운 말씀이 내 곁에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사이 나도 조금은 성장한 것 같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달라진 나를 보면 앞으로가 희망차다.
이러다 성불이라도 할지 모를 일이다.
아직 성불은 모르겠으나 세상을 향해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저버리는 짐승은 되고 싶지 않으니까. 아니 절대로 저버릴 수가 없어.
세상에는 눈물겹도록 감사한 게 수두룩 빽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