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알고 싶어요.
앙상한 뼈와 물컹물컹하고 탄력감이 느껴지지 않는 살덩어리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메마른 얇은 살갗.
아버지의 다리는 언제 보아도 텔레비전 속 에티오피아 난민의 다리를 닮아 있다. 누리끼리한 색깔만 다를 뿐.
운동하란 잔소리가 못마땅했는지 미간을 찌푸리시며 다리 좀 꼭꼭 주무르라고 딴소리를 하신다.
손과 발에 통증과 경직감을 달고 사는 딸내미의 고통 따윈 쿨하게 무관심하신 듯한 울 아버지.
그럼에도 늙어가는 그 모습이 애처로워 천천히 힘을 주고 꾹꾹 눌러본다. 가뜩이나 없는 살 덩어리들을 쥐었다 폈다 반복한다. 언성을 높이지 않는 걸 보니 나름 시원하신가 보다.
처음 미용실 스태프로 일을 배우던 그때부터 나는 손아귀 힘이 좋아 두피 지압이나 동그랗게 두피에 원을 그리며 문지르거나 천천히 엄지에 힘을 주고 두피를 꾸욱 꾸욱 눌러 대거나 씻어낸 곳을 다시 또 여러 번 깨끗이 헹궈내고 그런 일에 공을 들이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샴푸 팁이 많아졌고, 그럴수록에 머리를 직접 손질해 볼 수 있는 기회보다 "샴푸를 잘 하니까 샴푸 부탁해" 하는 소리를 더 자주 듣기도 했었다. 손아귀에 힘을 주고 머리를 시원하게 만드는데 몰두하다 보면 쓸 때 없는 뿌듯함이 올라온다.
"아!, 난 이렇게나 열심히 맡은 바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 애초에 목표 따위를 설정한 적도 없다 보니 원대한 꿈도 삶의 방향이나 비전도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 매 순간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욕구 판단 혹은 옳거나 그르거나 하는 도덕적 판단 위에 나를 세워 놓고 살았던 것 같다.
아버지의 수동적인 삶의 태도나 나의 본말이 전도된 하루하루 연명했던 삶이나 둘 다 매한가지였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여전히 자기 병을 돌보지 않고, 알려고 조차 하지 않고 죽어 버리면 그만이지 하고, 신경질 내시는 아버지는 내가 폐결핵을 앓아 일 년간 고등학교를 휴학했을 때조차 내게 한결같은 무관심을 보여 주셨다.
각혈을 하고 입가에 묻은 피를 다 씻어내지 못해 얼굴에 피 칠을 하고 지혈 주사를 맞기 위해 동네 버스 정류장을 가는 길에 아버지와 큰외삼촌을 만났지만 그분들은 나를 지나쳐 그냥 자신들 가던 길을 가셨을 뿐이다.
모르는 사람처럼 나를 스쳐 지나며 내뱉은 말이라곤 "동네 창피하니 나돌아 다니지 말아"라는 말을 남기고는 갈 길을 가던 그 두 분의 모습은 잊을래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얼마 전 아버지께서 어느 단체의 통장을 맡아 관리하시다 그걸 분실하면서 밤새 통장을 찾고 난리부르스였는데도 통장이 안 나와서 그 때문에 자살하고 싶었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다.
그 일을 계기로 아버지의 삶의 태도나 행동 그리고 화를 내는 이유에 대해 내가 짐작하고 있던 추측들만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들로 아버지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계시는지도 모른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
통장분실을 하면서 자살하고 싶었다는 그 얘기를 들은 뒤로 어쩌면 아버지는 통장이 분실됐을 때 거래내역이나 현재 잔액 등 그 통장의 모든 필요한 기록들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화를 내며 그 좋아하시는 잠도 못 주무시고 통장을 애타게 찾으신 거겠지.
내가 이 얘기를 아버지께 들은 뒤로 어쩌면 아버지는 자신이 잘 모르시는 수 많은 일들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을 갖고 계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별 것이든 별 것 아니든 작은 일에도 소리부터 지르는 아버지. 그 아버지와 꼭 닮은 나.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애정결핍이 대물림되어 아버지나 나의 결핍감도 덩달아 높았던 게 당연 지사였고, 모든 일에 예민해지고 지나친 기대감을 다른 대상에게 무의식 중에 기대하다 보니 사소한 것까지도 불만족해하는 사람이 돼버린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 말고도 욱하는 우리 집 사람들의 기질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을 발견하게 됐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육의 힘. 교육받는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던 우리 집 사람들. 교육이라 하면 지식일 수도 있고, 간접적 지식과 경험, 삶의 지혜와 방편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 집은 할아버지 때부터 보편적 교육보다 밭일이나 논일 돕기를 강요당했고, 공부한다고 불을 켜놓으면 전기세 나간다고 고래고래 소릴 질러대는 집안이었다. 아버지께선 어릴 적 서울 불광동에서 일을 하기 위해 독립하셨었는데, 조부모님의 우격다짐과 협박으로 다시 시골로 상경 산비탈을 깎고 돌을 골라내고, 나무뿌리 캐고, 자르고, 그렇게 만들어진 밭으로 농사를 짓고 줄줄이 사탕 동생들과 처. 자식을 입히고 먹이고... 눈만 뜨면 할 일이 태산이었다고 하셨다. 나 또한 어린이날이 되면 고추 모종을 심었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내게 어린이날은 고추 심는 날일 뿐이었다.
교육은 인간의 과도한 두려움과 불안을 제거해 줄 수가 있는 것 같다. 모른다는 것은 막연한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니까.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고, 문제 앞에 놓인 해결책을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찾아볼 수도 있게 해준다.
적어도 두려움을 없애주진 못하겠지만, 줄여줄 순 있다.
모른다는 것은 그만큼 대응 능력이 떨어지게 될 수밖에 없는 거니까.
모르다 보니 별일 아닌 것에도 움찔 놀라고 불안해지고 걱정이 앞서고 등등....
요즘의 아이들 중에는 부모 위해 공부해 준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는 것 같다. 물론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 얘기다.
내가 몇 등 했고, 어느 대학을 갔으니, 그걸로 엄마 체면 세워준 거 아니냐는 아이 얘기도 듣게 됐고,
그런데 나는 아버지나 엄마를 비롯한 나의 가족들과 부대끼며 공부의 필요성에 대해 과감히 외치고 싶어 졌다.
공부는 삶의 성공이나 보다 편안하고 안락함을 추구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라서 하는 게 결코 아니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싶다.
모르는 것을 안다는 것은 우물 안에서만 보던 그만큼의 하늘이 아니라 더 넓은 하늘이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주는 거라고.
권력이나 명예나 부 따위를 잠시 얻기 위해 죽자 사자 하는 게 공부가 아니라고.
안전한 삶을 위해, 혹은 수많은 선택의 옵션들을 누리기 위해서만 하는 게 공부가 아니라고.
내가 만든 나의 틀을 깰 수 있게 도와주고 그래서 날 더 자유롭게 해주는 원대한 거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삶의 떡고물들로 다양한 삶의 편리함들과 달콤함을 맛보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거기에 현혹되는 나니까. 그러나 그런 이유를 주목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억지로 해야만 하는 숙제처럼 여겨져 공부의 진면목을 만날 수 없게 하는 것 같다.
가끔은 공부라는 틀 안에 갇혀 같잖은 자기를 숨기고 으스대는 인간들도 분명 있겠지만.
고졸에 것도 상고 졸업이라는 학력 콤플렉스 덩어리였던 나지만, 상고 출신이 자랑스러울 것도 없지만 부끄러울 이유도 이젠 없다.
그럼에도 앞으론 즐기기 위해 기꺼이 공부하고자 한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갑자기 공부가 절박해졌다. ㅎㅎ
내일 죽더라도 새로움을 갈구하고 오래된 것들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인간이 돼보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인간의 마음에 대해 조금 더 일찍이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따스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모름지기 다 때가 있는 듯하다.
뒤늦게 앎의 경이로움에 눈뜬 중년의 나에게 힘찬 격려를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