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못해 부여잡고 있던 관계 놓아버리기.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도 통역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걱정되는 마음에 오랜 벗에게 한마디 건넨 말이 상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나는 전혀 상대를 불쾌하게 하려던 의도가 없었음에도 상대는 자기 식대로 왜곡해서 내 말을 받아들이고, 그 말에 자극받은 상대는 다시 내게 한방을 날린다. 자기를 보호하고 싶은 맘에 다시는 이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좀 격하게 말한 것뿐이라며 가볍게 사과한다. 그것도 무려 카톡으로 하는 사과를.
그 무례함에 치가 떨려 "나는 너를 후벼 파려고 그런 말 하지 않았어. 네가 듣기에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해. 하지만, 그렇다고 내게 널 만나면 되는 일이 없어라는 얘기를 하다니, 그게 친구에게 할 말이니"
그 친구는 한번 사과했으면 된 거지 왜 자꾸 물고 늘어지냐며 또 짜증을 낸다.
그날은 비 오는 어느 금요일이었는데, 친구가 기분이 다운되어 일부러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며 초대를 했던 날이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초저녁이었다. 동네 하천길을 나란히 걸으며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느닷없이 집을 구경했다는 얘길 하길래 그럼 융자는 얼마나 끼고 사는 건지, 그래도 성실히 돈을 모아 집을 사려 하는 걸 보니 부럽다는 얘길 했을 뿐이었다.
내 얘기가 끝나자마자 그 친구는 "너를 만나면 되는 게 없어" 이런 말을 뱉어 냈다.
속으론 어이가 없고 그 순간의 모욕감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만, 기분이 안 좋은 친구에게 바로 되받아 치지는 못했다. 나는 싫은 소리를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그런 성향이 더 강했다.
시끄러워지는 상황이 되면 내가 너무 힘들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분을 삭이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내 집에서 그 친구와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출근해 일을 하는 중에 내 속에서 불기둥이 솟구쳤다. 너무 화가 나서 그대론 안 되겠다 싶어 문자를 보냈다. 내 딴엔 큰 용기를 낸 행동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내 존재를 무시하는 듯한 처사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 일로 결국 카톡을 통해 사과를 받긴 했지만,
뒤이어진 친구 말에 더 화가 났었다. "그만큼 사과했음 된 거지, 우리 식구들은 내가 홧김에 어떤 말을 해도 다 받아 주는데, 넌 왜 이리 예민 하냐"며 따지고 들었다.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하고 유일하게 만나는 고교 동창이었기에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 보려 했지만, 나는 미련 없이 그 관계를 잘라 버렸다.
나중에 사 알게 된 거지만, 사실 그 친구와는 친하긴 하지만 사소한 관계에 불과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일부러 화해하려 더 애쓰지 않았던 게 사소한 관계였음을 증명해 주었다.
화가 났었지만 자초지종을 듣고 만나서 이만저만해서 서운했다 어쩌고저쩌고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너무 자기중심적인 것 같은 그 아이와 굳이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1년이 넘은 지금도 가끔 그 일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렇다고 다시 인연을 잇고 싶은 맘은 전혀 없다.
다만, 내가 여러 감정들 중 무시당하는 감정을 가장 싫어하는구나 알게 됐고, 나도 그 아이와 연결될 생각 없이 단지 그 애의 입에서 잘못을 절절히 시인하는 사과를 받아 내고 싶었을 뿐이었단 걸 알게 됐다.
같은 우리나라 말인데, 자기 마음으로 인식하는 게 다른 사람 사람들.
아무리 조심스레 얘기해도 상대의 가슴에 상처가 있으면 별 것 아닌 얘기도 크게 왜곡돼서 들리나 보다.
허전함에 이런저런 불필요한 말들을 뱉어 낼 때가 있는데, 말없이 그저 가만히 있어도 좋은 관계들이 그립다. 그 일이 있은지 몇 달 동안은 꽤나 흥분해서 그 앨 이해할 수 없는 몰상식한 아이라고 삿대질했지만(마음속으로)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의 시니컬함이 늘 걸렸던 것 같다. 진심으로 그와 연결되고 싶었다면 어떻게든 풀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