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리에겐 희망을 꿈꾸고 누릴 자유가 있는거야.
어제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세차게 내린 뒤 휘익휘익 휘~이이이익 불어대는 바람이 거세다. 나무에 묶어 두었던 자전거가 꼼짝 없이 넘어가 버리고...다시 세워 놓고 일하다 돌아와 보니 어느 틈엔가 또 철죽 꽃밭으로 쓰러져 있다. 안되겠다 싶어 아예 뉘여놔 버렸다.
"미안하다 철쭉아 겨우내 준비해서 올 들어 처음으로 피어난 것이었을텐데... 이렇게 짓밟아 버렸구나! 내 생각이 짧았어!" 자전거 생각만하고 니 생각은 조금도 안했구나!
하양과 분홍 철축 꽃들에게 못할 짓을 하고야 말았다.
퇴근길 길바닥 여기저기 나뒹구는 메타세콰이아 나무의 연한 이파리가 여기저기 바람에 나뒹군다. 잠시 바람이 쉬는 사이 바람과 함께 떨어진 나뭇잎도 숨고르기를 하는듯 보인다.
13일의 금요일 영화에서 주인공이 살인할때 썼던 구멍뚫린 가면처럼 펀치로 신발 발등 부위에 여러게의 구멍을 규칙적으로 뚫은 모양의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어느 틈엔가 발뒤꿈치 쪽으로 촉촉하고 미끈한 느낌의 감촉이 전해졌다. 신발 자체의 감촉이 아닌 생경한 느낌의 촉감에 혹시 벌레인가 싶어 신발을 털어내려 허리를 숙여 살펴보니 메타세콰이아 이파리 하나가 발뒤꿈치 아래 딱 붙어 있다.
메타세콰이아 잎은 바늘모양의 길쭉한 이파리들이 한 줄기에 대칭으로 나란히 붙어 있는 모양인데, 눈으로만 볼 때는 제법 뾰족하니 날카로워 보이고 절대로 부드러울꺼란 짐작이 어렵지만, 애기 이파리가 살에 닿았을 때의 촉감은 아기 엉덩이에 로션을 바른뒤 만졌을 때의 그 촉감 바로 그것이었다. 기분 좋은 촉촉함을 머금은 부드러움.
보기와 다른 촉감에 기분이 묘해졌다. 내가 변태기질이 있었나?음...뭐...아니라고는 못하겠네.
보는 것과 만지는 것의 차이. 꼭 꿀에 대해 사전으로 배운 것과 꿀을 뭐라 부르는지 모르지만 꿀을 먹었을 때 알게 되는 차이처럼 전혀 다른 느낌느낌.
관념과 실제의 괴리는 감히 상상불가의 영역임을 다시 실감하는 소소하지만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날라가 어디가서 처박힐지도 알 수 없는 나뭇잎. 자신의 의지대로 자리잡고 싶은 곳에 자리잡을 수 없고, 바람이 이끄는대로 그곳이 어디든 바람이 떨어트려 놓은 그곳에 떨어지게 되는 나뭇잎의 처지. 양지바른 좋은 곳에 데려다 준 바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넬 틈도 없이 바람은 또 알 수 없는 곳으로 나뭇잎을 날린다. 날리려는 의도조차 없이 나뭇잎을 날려 버린다.
왠지 사람 인생을 닮아 있는 것 같은 나뭇잎 그 나뭇잎과 사람의 닮은 인생이라니 잠시 처연한 기분마저 든다.
새옹지마 인생길에서 원하는데로 되었다며 좋아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좋았던 그 일이 원흉이 되어 고통을 겪게 되는 인간사.
가끔은 원하는데로 되는 것도 있지만 대게는 느닷없이 갑작스레 우리 앞에 뭔가 턱하니 놓여지고 만다.
그게 길조인지 흉조인지... 우리는 그 일이 한참 지나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우리의 눈으로는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혜안이 부족하다.
한치앞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생각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오묘함이 있기 때문이겠지.
다만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선택을 취할 수 있을뿐.
내가 잘나 권세 누리고 부귀영화 누리는 줄 알지만 그것은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만큼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위인들이 할 수 있음직한 얘기에 불과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들이 눈에 보이는 세계를 지배하는 듯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런 경험뒤엔 마음이 조금 겸손해진달까?
"착하게 살겠습니다. 모든 만물들에게 경배와 찬탄을 드립니다" 이런 마음이 되곤 한다.
인간에게 허용된 자유는 이미 일어난 상황을 얼마만큼 수용하는가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이 얘길 삐딱하게 들으면 어디에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주어지는 대로 수동적으로 살라고도 들릴 수 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떨어지는 그곳이 어디든 마음으로 저항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은 복종이나 굴종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억지로 받아들이는 복종과 굴종과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이지만,
받아들임과 복종 혹은 굴종의 차이를 짚어내는 것은 때가 무르익지 않은 인간에겐 설익은 감처럼 떫기만 해서 그 보배로움을 결코 알아보지 못한다는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삶에게 저항하면 할수록 삶은 내게 비탄의 길을 맛보게 해주고야 만다는 걸 나는 몇번의 우울증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쌍놈의 우울 그러고 보니 내게 그걸 알려 주려고 일부러 왔는데, 내가 한번에 못 알아 쳐먹으니 계속 온거구만. 알때까지....ㅋㅋ다신 오지마라. 무섭다...
아니 몇번 더 오고 싶다구?
딴데로 가라고 제발....
지금은 올태면 와라.
이렇게는 말 못하겠어.
왠지 언젠가 우울과 몇번 더 만나게 될 듯하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