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어린애 같은 어린 나.
모처럼 내가 좋아하는 은희 언니를 만나 즐건 한때를 보냈다. "언니 내가 알아볼 수 있게 내 옆에 나타나줘서 고마워" 언니를 떠올리면 눈시울이 벌게지고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맺히게 된다.
언니를 알게 된건 절에서 함께 살던 시절 같은 조가 되어 울력을 하게 되면서부터 였는데, 언니의 첫인상은 여자임에도 다부지고 결연한 뭔가가 느껴지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급하게 준비한 재료로 언니와 같이 김밥을 싸고 과일과 커피를 챙겨 집 근처 산 아래로 소풍을 다녀 왔다.
언니와 나는 둘 다 원인모를 통증을 앓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언니의 통증이 조금씩 더 세지고 늘어난 것 같은데, 언니는 언제나 나즈막한 목소리로 담담히 통증에 대해 얘기해 준다.
마치 뮤지컬이나 영화를 본 뒤 자기 나름의 평을 들려주는 것처럼.
언니를 볼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그렇게나 아프면서도 참 한결같이 곧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구나 싶다.
마디가 많은 통이 굵은 대나무 같은사람.
언니는 나보다 두어살 많은 여자 사람인데, 그 나이에 벌써 꼭 하고 싶은 일을 해낸 사람이기도 하다.
평생을 자원봉사를 하며 살고 싶었다는 언니는 인도 둥게스와리라는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 했었다고 한다.
언니는 화도 잘 내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거의 없지만, 아주 가끔 언니의 눈빛이 반달눈이 되고, 고개가 10도쯤 갸우뚱 기울어지고,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말을 경쾌하게 할때가 종종 있다.
인도 아이들과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릴 때 그때의 언니는 다른 사람이 된다.
맑고 환한 기운을 뿜어내며 언제 아팠냐는 듯이 해맑게 웃는 언니.
언니는 특별한 소원이 없다고 말한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은 해보았노라고.
그 점이 부럽기도 하지만, 언니를 보면 가슴이 아리다.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인데, 몇년째 통증과 씨름하느라 에너지가 많이 다운돼 있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쓰인다.
절에서 지낼때 어려운 자리임에도 스님께 당당히
자기 소신을 밝혔던 은희언니.
언니는 단지 이해가 가지 않아 스님께 말씀을 드린 것 뿐이라고 하지만. 언니가 이것저것 생각 했다면 결코 꺼내기 어려운 얘기 였을텐데.
참 맑은 사람이구나 싶다.
나라면 말한 뒤 벌어질 사태를 몇 번씩 속으로 시뮬레이션 해보고, 안전함이 느껴진 뒤에야 말을 뱉었을 터인데...
낮에 너무 김밥을 많이 먹은 탓인지 속에서 기름에 쩐 냄새가 올라온다. 엄마가 농사 지으신 들깨로 짠 들기름 냄새.
역하지는 않아 다행이다.
평소보다 말도 많이 하고 많이 걸어서일까 무척 피곤해져서 일찍 잠자리에 누웠는데, 깨보니 새벽 1시 무렵...
혼자 산다는 건 이래서 좋다.
이 시간에 깨어 제 멋대로 휴대폰을 만지작 대고 있지만 뭐라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으니...
집밖 공동묘지쪽 산에서 이름모를 새가 연신 같은 소리를 내는 중이다.
요며칠 기분이 다운돼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담담해진 느낌이다.
정체 모를 슬픔이 꾸역꾸역 올라와 자꾸만 밑으로 밑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에 불안 했었는데... 조금 가라 앉은 거 같아 안심된다.
나이들며 혼자 산다는게 흐뭇한 일로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혼자라는 편안함이 좋은 밤이다.
에너지가 급상승 했다 급히 꺼지곤 하는 나란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살기를 원하면서도 불편해 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내가 정해 놓은 룰이 흐트러지면 견디기 어려워하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고, 구속이나 속박 당하는 느낌이 들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나에겐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것 자체가 괴로운 일이 되버린 부분도 있고...
모처럼 일찍 눈뜬 기념으로 명상을 해보려 방석에 자릴 잡고 나니 갑자기 새벽예불 생각이 난다. 절에 살던 짧은 시절을 제외하곤 법당에서 예불을 드린 적은 없었지만, 오늘은 왠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어 야탑 정토회 법당에 다녀 왔다.
늘 입에 붙은 반야심경인 줄 알았는데, 그새 까먹은건지 중얼중얼 웅얼웅얼...
새벽예불에 조금 과한 이미지를 부여해 왔었음을 알게 된 경험이었다. 이제 기도는 언제나처럼 혼자 집에서 하게 될 것 같다. 언제라도 하고 싶을때 하기로...
경건하고 울컥하는 뭔가를 기대 했지만...기대는 언제나 실망을 동반하는 법.
혼자 갑자기 일찍 눈 떠진 밤이라도 이렇게 물흐르듯 내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오늘도 모두가 자유롭기를 편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