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듯 어떠하리 그냥 사는날까지 신명나게 뭉게 보자.
그냥 내 천성인걸까?
내 안에 슬픔이 한무데기여서일까?
내 안에 원망과 회한이 사무치게 쌓여 있어 그런 걸까?
나는 먹먹한 이야기를 불러 들이는 재주가 있는 듯하다.
날 찾아 병문안와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좋은 친구였던
그 아이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헤칠 작정을 하고 온듯했다.
이미 오래전 이혼을 결심한 듯이 담담히 얘기를 풀어나가는 그 아이...감히 어설픈 위로를 건넬수도...담담히 듣기에도 무거운 얘기..그냥 들어 주는걸로 내 몫은 거기까지였다. 그렇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간간히 그녀 앞에 위로나 충고, 조언을 투척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했다.
삶은 언제나 문제라면 문제 투성이 가시밭길 일지도 모르겠다.
일상 에피소드들을 문제로 보면 문제.
일상으로 보면 일상일 수도 있는 인생길 위의 갖가지 사건사고들.
사람들은 좋을 때는 나를 부르지 않는다.
나도 좋을 때는 남을 찾지 않는다.
힘이들고 외로움이 짙어질때 슬픔이, 불안이 두려움이 턱밑까지 차올라 숨쉴 수 없을때 그때 우리들은 누군가를 찾아 나선다. 고르고 골라 들어줄만한 위인을 찾아 헤맨다.
나는 그러하다. 내가 느끼는 너희들도 그러한 것 같은데...아님 말고.
내 안에 없는 것은 내가 느끼지 못하는 거라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다.
내게 보이는 것, 내게 들리는 것, 내가 느끼는 그것들이 이미 내 속에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거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강하게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도리도리 하고 싶지만...그럴수록 자명한 진리앞에 무릎 꿇게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야 만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아 몸부림치는 것들이야말로 기필코 내 앞에 언젠가는 나타나고야 만다. 반드시...무조건...
삶의 주파수대를 파꾸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나는 요즘이다.
어두운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는 내 파동들을 물갈이 하고 싶은 바램 말이다.
하지만 해묵은 나무 밑둥에 떨어져 스스로 거름이 되는 흑갈색 빛깔의 거무튀튀한 나뭇잎은 그 옛날 그 나무에 달라붙어 초록을 뽐내던 바로 그 나뭇잎일텐데...
나의 뿌리깊은 정체성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깊은 부정성을 온전히 느끼기에는 벅차고 힘겨우니 나 또한 살자고 이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산뜻하고 청량한 모습으로 싹 개비하고 싶은 그 마음도 다 살자고 그러는 것일테니, 그래 우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듯이 그리 살아 보자꾸나 하고 객기를 부려본다.
애초에 시작이 그 지점이었다면 무슨수로 그걸 도려낼 수가 있겠니?
조상이 싫어도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가 싫어도 결국에는 그 분들을 싫어하는 그 이유가 내게도 똑같이 존재하는 걸.
데칼코마니도 그런 데칼코마니가 없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