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새 인생 개척 소시민 이야기] 벽화 1인 기업 박영태 대표
◈ 전직 : ○○광고회사 등 16년 이상 직장생활, 식당 2년 운영(1998년~2000년)
◈ 2001년 7월 10일 벽화 전문 1인 기업「정우 디자인캠프」 창업
◈ 그림 입문 : 군 입대 전 옥계(玉溪) 오석환 화백 1년 동양화 사사(師事)
벽화는 고대 유적에 나올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현대에는 도시에 예술을 입히는 작업으로 발전했다. 벽화를 통해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시는 분이 있다. 동양화에 입문하여 디자인 광고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새 인생을 찾아 식당을 운영했지만 실패의 쓴잔을 마신 후 벽화에 눈을 뜨고 벽화 전문 1인 기업 <정우 디자인캠프>를 창업한 박영태 대표(66)다. 그는 절제된 생활과 다양한 운동으로 건강 관리를 철저히 하여 70대에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나가고 싶어 한다. (글쓴이 말)
- 디자인 회사에 다니시다가 퇴직하시고 2년간 식당 운영 후 다시 자신이 좋아하는 벽화 전문 1인 기업을 창업하셨더군요. 그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제가 회화 전공은 아니었지만 순수 회화 쪽은 조금씩 해 왔고 인천에서 활동 중이셨던 옥계(玉溪) 오석환 화백으로부터 1년 정도 동양화를 사사받게 되면서 입문했어요. 기본기인 사군자가 끝나면 산수화를 시작하는데 산수화 속 바위, 나뭇가지를 그리다가 군에 입대했어요. 군 복무 중에도 진중 창작 작품 전시회에 우리 대대 대표로 뽑혀서 상도 많이 받고 선물도 받고 작품도 낼 수 있게 휴가도 보내주고 그랬어요. 군 제대 후 그림만 그려서는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안 보였어요. 디자인 학원에 몇 개월 다녔어요. 나름대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충무로 디자인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지요.
지인 소개로 갔는데 그림 테스트도 했고 그동안 해왔던 작품도 보여주고서 입사하게 됐어요. 광고 디자인 회사 한 곳에서만 8년 정도 있다가 다른 디자인 회사로 옮겨서 제작 파트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었죠. 그렇게 16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식당 하기 전에 간판 가게를 2년 정도 했어요. 디자인 쪽에서 손을 놓기 싫어서 해봤지만, 그것 역시도 돈이 안 됐어요.
보통은 집사람이 요리 솜씨가 좋으면 쉽게 식당을 차리더라고요. 저도 그쪽이었어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식당이라는 게 새벽에 일어나서 밤 12시가 다 돼서 들어가는 고된 일이었어요. 15시간쯤 일했어요. 중요한 거는 수입인데 아내와 둘이 월급도 안 나오는 거예요. 식당 운영하는 동안에 그림을 정말 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더라고요. 식당 벽면에다 낙서 아닌 낙서를 하게 되고 또 식당 앞에 동사무소 직원들이 식사하러 와서 벽에 있는 그림과 글씨를 보고 나중에 급한 현수막 제작이 필요하면 저한테 와서 부탁하기도 했어요. 마음속에는 여전히 붓을 들고 있었던 거예요."
"벽화 재밌어서 시작, 우연한 기회가 평생 직업으로"
- 1인 기업 창업은 어떻게 하셨나요?
"경기도 부천시 부천역 중앙로 양측 도로변 지상 배전함 180개에 부천시 로고와 만화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해당 업체가 그 일을 받아놓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그 원고 내용을 보니까 회사에서 다 했던 일인 거예요. 제가 벽화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성공적으로 끝냈어요. 반응도 괜찮았고 그 회사와 우리가 하나의 거래처로 맺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처음한 그 벽화는 사업자등록 없이 개인적으로 하다가 벽화가 재미있어서 2001년 7월에 정식으로 사업자등록하고 시작한 거예요. 우연한 기회를 잡은 것이 평생 직업이 된 거죠. 광고회사 디자이너로 있을 때는 사무실 안에서 머리 쓰는 일밖에는 없었어요. 신문 광고나 CF 촬영, 모델 섭외 등 일들이 부서별로 나눠져 있었어요. 카피라이터, 제작 파트, 그렇게 각 부서별로 일했는데 이제는 혼자서 그 일들을 다 해야 되는 입장이 됐어요. 기획부터 아이디어, 벽화에 필요한 기자재, 화가들 섭외 등 1인 4역을 하다보니 힘겹고 고단했어요. 몸은 고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행복해요."
- 정우 디자인캠프 대표이신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벽화가 주 업무예요. 조형 작업도 해요. 철물로 된 오브제(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하여 작품에 사용하는 일상의 물건이나 자연물체)를 벽에 부착하는 작업도 하고,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 컴퓨터를 이용한 기계 제어 기술)를 통해서 오려낸 다음 색깔을 입힌다거나 요즘에는 벽화가 단순히 벽에 페인트칠만 하는 게 아니라 오브제를 통해서 안에 조명도 넣는 등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하고 있어요. 타일 벽화도 하고, 타일에다 인쇄해서 붙이는 일도 하고, 또 파타일이라고 타일 조각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그림 제작하기도 해요.
부천시 원미구 상동지역 아파트 개발 당시에 건설회사별로 철제 펜스에 글씨 쓰는 일을 많이 했어요. 벽화뿐만 아니고 조형물, 조형 작업, 캘리그라피, 트릭 아트, 실사 랩핑 작업도 하고 있고, 이런 것들이 지인 소개로 많이 이루어졌어요. 인맥이 일감을 물어주는 역할을 했어요."
"2년 정도는 현장 경험 해봐야, 내 시간 가질 수 있어 좋아"
- 직업 전환 전후의 소감과 1인 기업 창업 후 제2 인생에 있어서의 느낌은?
"제가 광고 회사 근무할 때는 디자인 편집이 순전히 수작업이었어요. 컴퓨터가 상용화되고부터는 모든 게 컴퓨터로 작업해서 인쇄소로 넘어가잖아요. 사실 광고회사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가 컴퓨터를 무서워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그리는 건 자신 있는데 컴퓨터는 정말 싫었거든요. 처음에 관공서에 일 들어갈 때도 시안이 필요하잖아요. 그걸 다 손으로 그렸어요. 수정 사항이 나오면 진땀을 빼는 거예요. 안 되겠더라고요. 포토샵을 서울 강남에 있는 학원까지 가서 어렵게 배웠어요. 피하지 않고 부딪힌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거를 내 마음껏 펼칠 수가 있으니까 너무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피했으면 이 업종에서 퇴출됐을 거예요. 포토샵을 배운 후에는 수정작업이 너무 편하고 시간 절약이 엄청나니까 정말 날아갈 것 같더라고요.
2001년도 창업할 당시에는 일이 만화 벽화가 주였기 때문에 더 수월했던 것 같아요. 만화라는 주제가 정해져 있으니까 여기도 만화 저기도 만화였어요. 일이 참 재미있었어요."
- 벽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몇 년 정도 경력을 쌓아야 창업 후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을까요?
"현장 경험이 중요해요. 벽화 일에서 페인트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현장에서 필요한 기자재들이 얼마만큼 투입되어야 하는지 파악하고 또 실제적으로 현장에서 일을 해 봐야지만 재료비를 산정하고 소요되는 품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죠. 그래야 견적을 낼 수 있기 때문에 한 2년 정도는 현장 경험을 해봐야 돼요. 견적 잘못 내면 손해를 볼 수 있거든요.
창업에 필요한 거는 혼자할 수 없는 일이니까 같이 그림 그릴 화가와 사용하는 재료를 알아야 해요. 제가 권장하고 싶은 거는 건축도장기능사 자격증이 있어요. 재료 쓰는 거를 가르쳐줘요. 글자 도안이나 패턴 도안하는 방법도 연습하니까 도움이 될 거예요."
- 창업 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창업 후 초창기에 우리가 알려지지 않았을 때 벽화 일이 약속된 게 없다 보니까 공백 기간이 길어지는 게 힘들었어요. 되게 불안했죠. 일할 때는 신나고 재밌는데 공백기간이 길어지면 이거 내가 여기에 잘못 발을 들였나 싶기도 하고 정말 초조했어요."
- 이 일의 매력이 있다면?
"서로 다른 일 앞뒤 공백기간 동안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엄청 자유롭다는 것이 이 일의 매력이에요.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신나게 일하고, 일이 없으면 내 시간을 가지면서 재충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죠. 그리고 벽화 일이 끝나고 완성된 작품을 바라보면 성취감이 엄청 높아요."
- 월 수입은?
"지난해 한 해 매출이 1억 5000만 원 정도 돼요. 작업 건수는 10건입니다. 1인 사업장 치고는 적은 편은 아니지요. 1건당 매출금액은 각기 달라요. 어떤 건 3000~4000만 원짜리도 있었고 몇 백만 원짜리도 있었어요. 순수익은 매출에서 20~40%까지 보고 있어요. 개인 봉급 정도는 충분히 나오는 거죠. 이제는 직장생활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아요."
- AI 시대 이 직종의 전망은?
"AI 시대가 왔다해도 벽화 현장 상황이 컴퓨터나 로봇으로 사람 손을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직은 사람 손이 필요해요. 벽화 분야는 1인 창업을 해도 전망은 밝다고 봅니다. 하루 아침에 배워서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상당한 그림 솜씨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아요.
저희 직종이 벽화뿐만 아니라 그래픽적으로 일반 도장도 할 수 있어요.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라 훨씬 색채 감각이 뛰어나기 때문에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죠."
- 인생 후배들한테 현실 조언 두 가지 정도만 부탁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거는 '체력 관리'인 것 같아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입장이라면 일단 건강해야 되잖아요. 저는 25년 동안 족구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체력적으로 지치거나 힘들지는 않아요.
두 번째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지루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방법은 취미가 업이 될 수도 있으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든 뭐든 한번 찾아보세요. 보통은 처음에는 취미생활로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일하면서 즐거우면 그게 자기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
"'뱅크시'(정체불명의 영국 화가, 그래피티 아티스트)처럼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요소 요소에 벽화를 그리고 싶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여기에 이런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고 해서 할 수 있는 풍토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할 만한 데가 정말 많거든요. 그런 쪽으로 재능기부를 통해 작품을 남기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현재까지 총 54화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전 인터뷰 기사가 궁금하시면 <퇴직 후 나는 다른 일을 한다> 책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2999879)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