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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Nov 12. 2022

팀원의 헌신을 프로젝트 계획서에 반영하지 않는다.

죽음의 프로젝트(death march project)를 만들지 않는다. 

헌신이란 팀원들이 프로젝트 목표달성을 위해 업무에 몰입하고, 일정을 준수하기 위해 잔업도 기꺼이 수행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헌신하는 팀원들은 주어진 업무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약속하고 행동한다. 운이 좋게 팀원의 헌신으로 힘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도 있다. 그러나  팀원의 헌신은 여러 가지 조건들이 충족될 때 가능하다. 프로젝트 관리자의 리더십, 프로젝트 업무의 가치, 경영층의 스폰서십, 팀워크, 보상 등이 뒷받침될 때 팀원들은 프로젝트에 헌신한다. 따라서 프로젝트 계획서에 팀원의 헌신을 반영하면 안 된다. 그것은 가능성 낮은 행운에 기대어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는 것과 같다.  

 

팀원의 헌신을 프로젝트 계획서에 반영하는 이유는? 


프로젝트 관리자가 팀원의 헌신을 프로젝트 계획서에 반영하는 이유는 그러한 프로젝트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거부할 수 없거나 기꺼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팀원의 헌신 없이 목표 달성이 어려운 프로젝트는 정상보다 30% 이상 짧은 기간에 프로젝트를 끝내야 하거나,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거나,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에드워드 요던(Edward Yordon)은 이러한 프로젝트를 ‘죽음의 프로젝트(death march project)’라고 하였다. 죽음의 프로젝트는 팀원의 헌신 없이는 성공이 불가능하다. 


실패를 예감하더라도 실패하는 계획을 수립하는 프로젝트 관리자는 없다. 따라서 팀원의 헌신을 프로젝트 계획서에 반영하게 된다. 그 결과 매우 높은 생산성, 비 현실적인 팀원의 문제해결 역량을 고려한 프로젝트 계획이 탄생된다. 프로젝트 관리자가 죽음의 프로젝트를 수용하는 이유는 조직 내 생존을 위한 경우도 있지만, 승진과 같이 자기의 성장을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프로젝트 관리자가 과거 이슈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면 본인의 역량을 과신하여 팀원의 헌신을 반영한 프로젝트 계획을 수립하기 쉽다. 그러나 프로젝트 관리자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과거 프로젝트 팀원들과 달리 요즘 프로젝트 팀원들은 달라졌다는 것이다. 

 

팀원의 헌신을 이끌어내기는 매우 힘들다. 


필자의 경험 또는 필자가 읽은 책에서 80, 90년대생은 이전에 세대보다 회사업무에 헌신하는 정도가 낮다. 60,70년 세대에서는 가족보다 회사일을 우선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워라벨이라는 용어가 말하듯이 일에 대한 가치가 많이 달라졌다(그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전 세대는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지시에 익숙하고, 최근 세대는 논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수평적 의사소통을 선호한다. 

80,90년 세대의 헌신(요즘 말로는 영혼을 갈아 넣는)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관리자의 역량이 뛰어나고(인간적으로 끌리면 더 좋다), 조직 내에서 이 프로젝트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예를 들어 신규사업을 위한 프로젝트), 함께 하는 팀원들이 믿을 만하고, 본인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명확해야 한다. 이때  보상은 물질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본인의 경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신기술 습득, 원하는 부서로의 이동과 같은 보상도 해당된다

팀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이 프로젝트가 헌신할 가치가 있다고 프로젝트 관리자가 판단한다면 팀원들의 헌신을 프로젝트 계획서에 반영해도 좋다. 혹시 본인의 카리스마 가득한 리더십으로 팀원들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여 팀원의 헌신을 프로젝트 계획서에 반영한다면 불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팀원의 헌신을 프로젝트 계획에 반영하면 어떻게 될까? 


프로젝트 관리자의 할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 또는 혼자만의 불굴의 의지로 무리한 계획을 수립했다면 결과는 뻔하다. 최악은 조직에서 우선순위가 낮은 (그래서 예산도 작고, 팀원들의 역량도 부족하고, 인원수도 부족한) 프로젝트의 계획을 경영층에게 보고할 때 경영층이 지나가는 말로 ‘3개월만 당겨서 완료하세요’라고 말했고 프로젝트 관리자가 우물쭈물하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식으로 프로젝트가 시작하는 것이다. 그 결과‘무리한 계획 → 팀원의 사기저하 → 낮은 생산성 → 프로젝트 지연 → 무리한 만회계획 → 팀원의 사기바닥 → 지속되는 프로젝트 지연’와 같은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필자가 프로젝트 악순환을 조금 과장되게 표현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같은 악순환에 빠진 프로젝트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악의 프로젝트 관리자(또는 고객)는 지연일정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팀원들을 압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8시 이전에 퇴근을 못하게 하거나 주말 근무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팀원들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본인을 압박하는 프로젝트 관리자(또는 고객)들을 속인다. 여러 가지 핑계로 잔업을 회피하거나 불가피하게 몸은 남아 있어도 마음은 프로젝트와 상관없는 곳에 있는 것이다.  이런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는 95% 진척률 신드롬(never ending 95% syndrome)’에 빠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답이 없다. 고객(또는 내부 이해관계자), 프로젝트 관리자, 팀원 모두 생존 방정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각자도생이 시작되고 프로젝트는 오리무중에 빠지게 된다. 프로젝트를 끝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범위를 조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완성된 수준에서 품질만 보완하여 프로젝트를 끝내는 것이 현실적이다. 물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SI 프로젝트와 같이 계약에 의한 프로젝트이거나, 조직 내에서 중요도가 높은 프로젝트와 같이 범위 조정이 힘들다면 프로젝트 정상화를 위해 프로젝트 관리자가 교체될 수도 있다. 교체된 프로젝트 관리자는 ‘죽음의 프로젝트 시즌 II’를 하지 않기 위해 부득이하게 판을 키울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기간보다 늘려 잡고, 정상적인 인력보다 많은 인력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 프로젝트가 끝이 난다.



 

불굴의 정신이나 헌신을 팀원에게 기대해서는 안된다.  합리적인 생산성에 기반한 프로젝트 계획을 수립하고 경영층에 요구해야 한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팀원의 헌신을 이끌어내는 것보다는 백배 쉽다.    


https://brunch.co.kr/@kbhpm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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