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할 권리도 3점을 획득한 후 go를 하는 사람에게만 부여된다
지금은 회사를 퇴직하셨지만 필자가 존경하는 선배가 자주 했던 말이 있다. “3점이 나야 go를 하던 stop을 할 수 있어. 3점 났어?” 고스톱에서 1점과 2점은 0점과 같다. 회사에서는 1점과 2점은 0점보다 나쁘다. 잘못된 일에 자원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운영업무에서는 3점 이론을 적용하기 힘들다. 보다 빠르고 보다 높은 품질을 달성할 수 있지만 운영업무는 기본적으로 점수를 내야 하는 일이다. 은행 지점에 고객이 예금을 하러 왔는데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이에 대응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새로운 일을 기획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프로젝트는 기존에 없거나 있는 것을 변화시키는 기획이기 때문에 3점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 결과가 좋지 않아 3점도 안 되는 프로젝트도 있고, 결과가 좋아서 새로운 프로젝트(go)를 만들기도 한다.
조직의 업무에서 3점이란 무엇일까?
고스톱에는 점수를 계산하는 명확한 규칙이 있지만 조직 내 업무에 점수를 부여하는 객관적인 방법은 없다. 예를 들어 경영층이 “실물기반으로 프로젝트 진척률을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보고하세요”라는 지시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명확한 3점의 조건은 실물기반의 진척률 관리방안을 수립하고 실제로 적용하는 것이다. 기획안이 보고서로 끝나지 않고 현실 적용으로 이어졌다면 업무지시를 한 경영층이 보고서 내용을 인정한 것이기 때문에 보고자 입장에서는 3점이 났다고 평가해도 된다. 현실에 적용 후 원래 의도했던 성공을 거둘 수도 있지만,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실패할 권리도 3점을 획득한 후 go를 하는 사람에게만 부여된다. 설사 실패했다고 해도 그것은 기획안을 지시하고 승인한 경영층의 책임이다. 많은 기획안이 현실에 적용하지 못하고 문서로 끝난다. 프로젝트도 최초 의도했던 대부분의 업무를 오픈하여 적용한다면 3점은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년 뒤 프로젝트 운영을 중단한다면 누군가는 고스톱의 독박을 쓸 수도 있다.
현실에 적용하지 못한 기획안의 3점은 어떻게 평가할까? 고객 요구사항 충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 판단은 업무를 요청한 상급자가 해야 한다. 상급자가 후배의 년간 고과를 평가할 때도 대부분 3점 이상을 획득한 업무만 고려한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기획안을 본인이 평가한다. 현실에 적용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를 남 탓, 환경 탓으로 돌리고 본인은 최선을 다했고 기획안도 최소한 3점은 얻었다고 생각한다. 상급자가 현실에 적용하지 못한 후배들의 기획안에 3점 이상을 부여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 후배가 해당 기획안 작성을 위해 흘린 땀을 안다.
성과와 노력은 다르지만 노력은 성과를 평가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후배가 기획안 작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상급자는 성과를 인정하기도 한다. 물론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하는 상급자들도 있다.
- 기획안은 좋지만 여러 가지 제약으로 현실에 적용하지 못한다.
업무를 지시한 상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요인 때문에 기획안을 현실에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후배의 기획안을 인정할 뿐 아니라 심지어 미안해하기도 한다.
업무에서 3점을 얻는 방법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에서 업무 또는 요구사항의 완료기준을 설명하였다. 3점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업무를 요청한 사람의 업무 완료기준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획성 업무는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완료기준을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기획업무의 완료기준은 ‘적용효과가 명확하고’, ‘실현가능하고’, ‘구체적인 계획이 있고’와 같이 두리뭉실할 수밖에 없다. 기획업무의 3점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획안을 요청한 사람과 자주 대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주 동안 기획안을 작성한다고 가정할 때 이틀에 한번 기획안을 검토한다면 최소한 3점은 획득할 것이다. 기획안 검토를 하는 과정에서 상급자의 의견이 대부분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완성도 낮은 보고서를 검토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러나 기획안의 완성도를 최대한 높인 뒤에 보고하는 것보다는 초안이라도 자주 소통하는 것이 높은 점수를 획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급자 입장에서는 짧은 시간에 작성한 보고서이기 때문에 완성도에 대한 기대 수준이 낮아 잘못된 것이 있어도 가벼운 코멘트로 끝난다. 그러나 주어진 기간의 마지막에 처음 보는 보고서가 잘못되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중요한 기획안이라면 주 2~3회 정기 검토시간을 잡는 것이 좋다. 몸은 고달프겠지만, 실패의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3점 이상을 획득하려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데 달리 좋은 방법은 없다. 오랫동안 상급자와 일을 해서 업무를 요청한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다고 자신할 수 있다면 예외다.
보고를 위한 기획은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보고를 위한 기획은 보고 듣기에는 좋지만 실현가능성이 낮은 기획을 의미한다. 주로 톱다운으로 지시받은 업무를 기획할 때 이런 일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리스크를 조기에 식별하고 조치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하세요’라는 경영층의 요청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그 결과는 보통 프로젝트 관리시스템에 보다 많은 정보를 등록하여 위험지수를 관리한다거나, 매월 프로젝트 위험식별회의를 하는 것이다. 방법이나 결과가 손에 잡히지 않는 기획안일수록 내용은 복잡해지고, 미사여구는 많아진다. 보기에 좋은 그럴듯한 기획안으로 보고하는 순간에는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획안을 실행하는 사람에게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속하기 힘들다. 프로젝트 팀이 노력한 결과가 더 많은 보고서 작성으로 돌아온다면 프로젝트 팀은 진실을 숨기게 된다. 세금을 내는 사람에게 혜택이 없다면 조세저항이 있듯이, 노력을 하는 사람에게 혜택이 없다면 중력을 거스르는 일이 된다. 중력과 반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경영층이 1~2년 이런 에너지를 공급해 줄 수는 있지만 지속할 수는 없다. 잘못된 프로젝트 리스크 관리방안을 몇 년 적용하면, 시간이 지난 뒤 프로젝트 리스크 관리를 위한 새로운 기획을 하는 후배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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