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규스케 Jun 09. 2020

존중받을 때 소년은 처음으로 웃었다

영화 <가버나움>

감독: 나딘 라바키
장르: 드라마
개봉: 2018
국가: 레바논, 프랑스

출연: 자인 알 라피아, 요르다노스 시프로우 등

가버나움은 프랑스 말로 잡동사니, 혼돈이라는 뜻이다. 가버나움이라는 뜻처럼 이 영화 속 상황은 21세기 배경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히 충격적이다. 12살 주인공 자인을 둘러싼 환경이 그렇다. 자인의 가족은 가난하다. 그러나 자식은 많다. 집에서 계속 살기 위해 자인의 부모는 11살 사하르를 집주인에게 시집보낸다. 결국 사하르는 11살에 임신을 하게 되고 하혈하다 죽는다. 자인은 결국 집주인을 칼로 찌른다. 이후 부모를 고소한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죄, 그리고 부모가 새로운 동생을 또 임신한 죄로 말이다.


자인과 동생 사하르의 다정한 모습


영화 속에 등장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서류'가 없다는 점이다. 자인은 그 흔한 출생신고서, 주민등록증도 없다. 심지어 나이도 모른 채 살아간다. 자인이 가출한 뒤 만난 라힐의 삶도 마찬가지다. 갓난아이를 출산한 미혼모인데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체류증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결국 아이와도 떨어지게 된다. 서류가 없는 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다. 자인이 사하르와 함께하지 못한 것처럼. 라힐이 자식과 멀어진 것처럼. 이사를 갈 수도 없다. 학교를 갈 수도 없다. 결국 '주체성'을 빼앗겨 버린 채 '가버나움' 상태가 된다.

영화 속에서 자인은 이렇게 말한다.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었어요". 자인에게 존중이란 어떤 의미일까. 영화 내내 무표정을 짓던 자인은 영화가 끝나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다. 신분증 사진을 찍는 장면에서 말이다. 처음으로 '서류'가 생기는 장면에서 자인은 '주체성'이란 게 생겼고, 세상으로부터 '존중' 받게 된다. 하나의 인격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환하게 웃는 자인


존중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최소한의 인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밀려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꾸 상기하지 않으면 잊히는 사실이 너무나 많다. 특히 목소리 없고 힘이 없고 돈도 없는 이들은 더욱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저널리즘을 하려는 사람으로서 무서운 일이다. 기억의 파도가 밀려와 모든 것을 휩쓸어갈 때 이를 거슬러 오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매개체는 영화고, 다큐멘터리고, 보도고, 기사다. 다행히 먼저 앞서서 기억의 파도를 거슬러 오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콘텐츠를 보며 세상에 필요한 목소리를 꾸준히 입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나를 포함한 다른 이들의 기억의 파도까지 막아줄 '방파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아이 자인이 더 어린 아이 요나스를 보호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