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긴 사유
길가다가 담쟁이넝쿨에 휩싸인 건물을 만나면
마치 복면 쓴 고릴라를 보는 것 같다.
복면 쓴 고릴라는 내가 알고 지내는 지인의 남편 같아
나는 털북숭이 남자를 향해 평생 배워본 적 없는 관상쟁이가 되어본다.
"고릴라상이오,
기가 세고 관골이 길고 넓으니, 추진력이 뛰어나 한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이뤄내겠지만, 떡 벌어진 기골이 장대한 남자라 판이 너무 크오. 생활력도 강해 재물까지 몸에 서려 좋은 발상과 새로운 아이디어로 영업도 잘하겠으나, 큰 입속 치아로 보아 부지런하기도 하겠으나, 또한 빽빽하니, 내실도 좋소. 까만 눈은 식별능력이 있어 사람이나 물건을 잘 보며 귀가 많아 듣는 것도 많소만,
나쁘게는,
품은 뜻은 높으나 행동의 제약이 많소. 긴 얼굴에 비해 코가 짧소. 코가 짧으면 생각이 빠르오. 콧구멍이 앞에서 훤히 드러나 보이니, 기분파로서 언행이 가볍고 깊은 고민 없이 질러대는 말로 쓸데없는 구설을 불러일으키기 쉽소. 그리하여 자칫 외화내빈이 될 수 있소. 탄탄한 골격은 달려 달려! 하는데 변화에는 수동적이오. 상처 잘 받아 악플에 시달리니 꼼꼼하고 세밀한 참모는 필수여야하오.
그러니까,
오늘부터라도 당신의 참모는 아내라는 걸 잊지말고
판단력 뛰어난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끝도 좋겠소."
길 가다가 멈춰선
내가 봐 준 오늘의 관상
서툴기 짝이없다고?
아니다, 숟가락몽둥이 몇 개인지도 훤하니
쪽집개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