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긴 사유
터무니없게도 나는
풀의 등에 기대어서도 깊어지거나 쓸쓸해진 적이 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당연한 이치 때문일까.
꽁꽁 언 차가운 땅을 헤집고 올라온 복수초!
활짝 웃는다.
휘몰아치는 바람에도 끄떡 않고
소복하게 쌓인 눈 속에 핀 꽃!
몇 만 년 전쯤의 아득한 허공에서 뛰어내렸을 별똥별 같다.
"못해 못해 이젠 힘들어."
하루에 두 가지 일을 하기 힘든다는 또래여자들과는 달리
아침 일찍부터
지하철 4호선을 내려 7호선을 갈아타고
이번에는 마을버스에 오르는 나는
여전사가 아닐까?
"대충 살아요 세상 변화에 뭘 그렇게 예민해요?"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모르니까 더 서럽잖아."
여전사인 나는 세상 곳곳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낙오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복수의 칼날을 가는 동안
돌들이 아슴아슴 포개진 팔공산 가산산성 성곽에 갇힌 저 꽃은
슬픔을 어깨에 매고 나를 따라다닌다.
"같이 가요 걸음이 너무 빨라요."
아직 두 볼과 무릎이 아려도 참느라 읍, 읍, 신음소리만 삐죽삐죽 삐져나온다.
나보다 더 깊어지고 쓸쓸해진 적을 만나면
너무 깊게는 베지 말 일이라고
절망스러운 상황을 헤아리는 복수초!
겨울 골방을 자꾸만 햇살로 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