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긴 사유
<배자못 길> 도로 명 표지판이 푸릇하게 허공에 걸려있다.
은빛으로 덧칠된 도료명 이름표가 햇살에 비춰져 비늘처럼 반짝인다.
월척붕어 튀어오른 표지판 아래를 지나가면
온통 도로가 수면인 듯 달빛 또한 환하게 내려앉았다.
<배자못>에 수초처럼 자란 아파트 905호에 살고 있는 나는
물살을 온몸으로 휘돌아 나오다가
웅숭깊던 젊은 날의 열정과 만난다.
닿을 듯 닿지 않는 청춘의 경계에서
외고집 낚싯대로 다가가면 끈질긴 기억 한 자락 만날 수 있다.
물컹함을 다져서 메우면 식물이 자랄까요? 고층 아파트 갈대처럼 설까요?
물고기처럼 지느러미를 흔들고 싶어지네요.
식물이 자라다가 고층아파트가 갈대처럼 서있는 지금의 풍경을
배란다에 서서 바라보다가 문득,
관절이 녹스는 방에서는
촘촘한 비늘붕어를 꿈꾼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대는 수몰된 나를 낚아낼 수 있을까요? 내 어혈까지 낚아주면 안될까요?
지느러미를 흔들며 이리저리 헤집는 수초의 틈이 너무 빽빽해요. 그래서 자꾸만 몸이 끼여요.
젊은 날 그대와 나의 몸에 스민 사과탄 냄새 풍겨나는 그 기억의 터에
지금껏 외고집 낚싯대로 머물고 있는 나는
여전히 붕어인 그대를
결국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