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긴 사유
일 년 중 절반이나 눈이 내린다는 강원도 고성 진부령 ‘흘리 마을’로 가고 싶다.
그곳에서는 가속의 내 삶도 느슨해질 듯
안티에이징 크림을 듬뿍 얼굴에 바른 여자가
기차역 플랫폼에서 열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여름을 지운 철로의 긴 겨울 이야기다.
저 역사 너머,
허공 끄트머리 흘리에는
열차 안처럼 서너 사람만 띄엄띄엄 서 있거나 앉아 있을 뿐
추억 속 기억들만 빼곡한 눈발에 섞일 거야
한 기억이,
부질없는 추억에 덮이고 덮이다가
난데없이 강원도에서 눈 녹자 발견된
수북한 A4 종이 뭉치
그건 내가 쓰다가 구겨버린 완성된 소설보다 더 좋았을 분실의 미완성
몇 편의 단락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철로 위 열차 한 대를 끌고 흘리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