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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작가 Mar 11. 2024

동충하초<冬蟲夏草> / 권분자

짧고 긴 사유


동충하초<冬蟲夏草>


권분자


 

 집 하나 갖지 못한 벌레가

 통나무 벤치에 올라앉아 가을나무를 보다가

 누군가 급히 꺼버린 담배꽁초 주워 물고

 성냥을 그어 불을 당긴다

 

 저녁 빌딩들은 다황냄새를 매달고

 사람들을 높은 곳으로 데려가느라 엘리베이터는 분주한데

 침낭 하나 구입할 여력없는 벌레는

 푸석거리는 발가락을 나무의 첫가지에 걸어 두고

 깊은숨으로 연기를 들이킨다

 

  홀쭉하게 꺼져있는 위장을 허공에 띄운 채, 도시의 불빛 끌어 덮고 잠들려했으나 '묻지마라 묻지마라' 높은 곳에 먼저 오른 고치는 '철퍼덕!' 떨어져 망가질 생(生)일 바에야 버즘나무에 매달려 동충하초나 되라한다. 노동에 뻐근하던 등이 시려오는지 한때는 잎을 갉는 애증에 휘둘렸는지, 저절로 치아 빠진 잇몸 드러내며 벌레는 허탈한 웃음이다 너도 한시절은 누구의 지인이었고, 눈길 훈훈한 가족이었을 것인데, 나무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변신을 꿈꾸더니, 오늘은 잠들 곳 찾아 어슬렁 거리는구나

 

 어느새 초라해지는 늙음 앞에 

 너는 왠지 후회뿐인 몰골이다

 빌딩 숲 통나무 벤치에게 사랑했다 고백하듯

 고통의 나이테 위에 잠시 올라 앉는 벌레

 사람들의 숲에서 물컹한 행려 따윈

 원근이 지워진 땅거미가 매만진다

 

 날벌레라도 날아 든 듯

 사람들은 눈 비비며 지나가고

 웅크린 벌레는 절대 보지 않았다는듯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있다

 

 입 닦고 하늘을 응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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