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긴 사유
<벚나무 카페>에 앉아있는 나는 벌처럼 앵앵거리는 전화기를 든다.
며칠 사이에 수백 명의 친구가 SNS 속에서 늘었다가 줄었다가 하는 걸 검색해 본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설렘은 점차 사라지고 없다.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일 뿐이지 라고 웅얼거릴 뿐이다.
오래도록 노환으로 앓던 부모세대는 이제 다 떠나고 없다.
마치 꽃을 지운 뒤에 밤의 찬란함은 온데간데없고
늙은 담장과 지친 나뭇가지만 남아 삭막해진 것처럼……,
대 바겐세일 현수막 내다 걸던 한 시절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나뭇가지에 오종종 모여 있던 그 많던 꽃들은 또 어디로 떠나갔을까.
한때 그들과 복닥이던 나는 밤에 보는 담장 위의 꽃과 같았다.
그것은 마치 현실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 만치 환상적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흘러버린 걸까.
부모세대가 앉아있던 나뭇가지에 언제부턴가 내 세상이라고 외치던 나와 지인들,
우리는 한 동안 복닥복닥 왁자지껄했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그런 나의 지인들도 흐르는 시간에 따라 종소리도 없이 시작되는 수업시간처럼
이제는 홀로 유튜브를 듣거나, 병을 앓거나, 침묵하며
아직은 살아있다는 증표처럼 나뭇가지 위 진초록 칠판으로만 걸려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겪지 못할 것을 겪은 것처럼,
내가 느낀 것은 배반이 남긴 지독한 고독이었다.
늘 한 발짝만 벗어난 곳에 있는 줄 알았던,
바로 지금 내 곁의 너는 생각 없이 쓴 유서처럼
찢기어 흩뿌려지는 꽃잎의 얼굴이다.
세상 판이라 여기며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를 드나들던 방문자가 남긴 포스트잇들,
<기다리다가 간다> <다녀간다> 삐뚤삐뚤 써놓은 갖가지 암호가 닥지닥지 붙어있다.
<벚나무 카페> 서쪽 벽면이 울긋불긋 어지럽도록 물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