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긴 사유
전봇대가 포도<鋪道>를 비집고 서 있어서일까. 틈이 생겨난 길 위에 단풍나무 씨앗이 날아들었다.
틈 밖으로 고개 쏙 내민 싹은 전봇대보다 더 높이 자랄 욕망으로 발목을 담갔을까?
그렇다면 과연 몇 번을 망설이고 망설였을까?
길은 여전히 질주의 세계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잠식되지 않으려하는데
너의 내부에 잠재된 내 몸의 붉은 열정은 하늘을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인 양
내 눈동자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기대어설 산 능선이 없어도
흙의 무릎팍에 생겨난 검은 딱지 아스팔트
그 페인 틈에서도
상처의 깊이를 재면서 자라는 나무야!
그래! 살아간다는 것은, 그 지독한 마음의 흉터를 껴안는 것 아니겠어?
발목뼈가 휘어지도록 홀로 서는 것이지.
나무가 넘어야할 공간의 경계에는
살아남으려는 생의 의지들이 곳곳에서 분주하다.
아래로 뻗어가는 나무의 발끝은 흙의 표정을 몇 겹까지 더듬었을까.
아슬아슬한 죽음이 꼼지락거리는 세상사이고 보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무릉의 계곡은
너도 나도 잊자, 어린 단풍나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