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다 흘러내리지 못한 용암의 등뼈는 어디일까?
여동생과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떠난 제주도에서 말 타기 체험에 나섰다.
여동생과 어머니는 젊은 말의 안장 위에 구름처럼 사뿐 내려앉았고,
그녀들 뒤를 마부가 고삐를 쥐고 따라붙었다.
-저는 왜 마부가 없어요?
-없어도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
주인장은 젊은 말은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함부로 경로를 이탈하거나 말을 잘 안 듣지만,
늙은 말은 세상을 짐작하기에
젊은 말의 뒤를 조용히 따라 갈 것이라 말했다.
결국 나만 늙은 말을 배정받아 마부도 안장도 없이
분화구 같은 말 등에 겁 없이 엉덩이를 옮겼다.
흰머리 휘날리는 어머니에게 앞자리를 양보한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등이 구부정하게 올라앉은 어머니!
늙고 병약해 돌봄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왜 여태 인지하지 못했을까.
아들 딸 며느리 손주들에 둘러싸여 소녀처럼 순진한 미소로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던 어머니!
오늘만큼은 자유를 누리는지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 마치 민들레 풀씨 같았다.
-조교가 필요하지 않나요?
아찔한 민들레꽃이 속삭이는 한라의 경사면에서
나는 어머니의 생의 반경을 기웃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로부터 천천히 벗어나기로 했다.
앞서 저 만치 걷던 어머니의 말은 양지의 민들레 앞에서 멈춰 섰고,
유목의 벌판으로 내몰아가던 내 말은
갈기 움켜쥔 손 안의 씨방이 되어 바람에 실려 갔다.
내가 올라탄 늙은 말의 등 안쪽에서는
묽은 용암의 쿵쿵 뛰는 소리가 오래도록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