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요리책을 펴놓고 저녁밥을 지을 때 쯤에야 깨달았다.
주방 창문을 넘겨다보는 가로수가 내 쓸쓸함의 친구였다는 것을….
부패한 낙엽냄새도 가을 안개도 하중을 무겁게 하지만,
정기휴일 안내판 따윈 단 한 번도 내걸지 않은 내 주방을
힐끗힐끗 들여다보는 가로수에게
침묵에 길들여진 나 또한 그의 친구이다.
뚜껑을 갓 딴 탄산음료처럼 상처의 기포를 안으로 사리던
나무의 몸도 나의 몸도
노을이 탬버린으로 흔들릴 때까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죄가 크다면 크다.
늘 괜찮다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나는
가로수가 말하는 사랑법을 이해한다.
비로소 알게 된 그의 사랑이란
가을안개까지 절이거나 햇살에 실증 난 새들마저 한 품에 안고 잠드는 것
가까운 곳에서 오래 바라볼 나의 친구!
그대의 붙박힌 마음 품에서
일기장을 쓰고 있는 이 저녁이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