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해질녘, 집앞 버스정류장에서 101번 버스가 토착하기를
줄서서 한참이나 기다리는데,
흰 머리카락 여자가 내 그림자의 배꼽을 밟는다.
얼굴은 파삭 말라있지만 눈과 콧날은 뽀죽하다.
당장이라도 내 목덜미를 낚아챌 것만 같다.
저 여자! 꼬리 아홉개쯤 감춘 여우가 분명하다.
조금만 더 젊었다면 몇 남자의 간쯤은 가볍게 더 파먹었을 여자,
입가에는 선혈자국이 얼핏 보였다.
당신 여우 맞지?
물어보고 싶은 내 생각 발치에 다가온 그녀,
타조 목도리 두른 나보다 먼저 버스에 발을 얹는다.
엉겁결에 그녀를 따라 오르는데? 아차, 북망산으로 가는 열차였나!
사람들은 모두 표정이 없다.
조금 후면 팔공산 하늘에 보름달이 떠오를 것 같은 예감이 물컹하다.
버스는 내가 뛰어내리지 못할 속도를 끌고 능선을 올라 간다.
어느 산속 한적한 정류장에 나를 내려놓고
저 흰 머리칼 여자는 총총 어디론가 사라져버릴까?
어릴 적 화로 안에서 숯이 삭아가는 동안 듣던
여우에 홀려 봤다는 아버지의 말이 이런 것이구나!
엉덩이 흔들며 걷는 내 유혹에는 그 어떤 남자도 매달리지 않았기에
둔갑술의 열쇠는 던져주지도 않고
내 질문에 숙제만 잔득 남겨주던 오학년 담임처럼
그녀는 산속 어느 정류장에서 내렸다.
여우가 야속하고 얄밉다.
그래, 흔적 남기지 말고 잘 가라 여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