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어느새 예순의 나이다. 살면서 부족했던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평소에 괴담을 즐겨듣던 나는 여행지에서 홀로 묵어야하는 숙박이 문제였다. 내가 두렵거나 무서워하는 건 무엇일까. 여행일까 사람일까 보이지 않는 존재들일까. 언제부턴가 사람보다는 언 듯 눈에 뛸 뿐, 확인 되지 않는 형체의 실루엣이 더 무서웠다.
“사람이 무섭지 귀신이 뭐가 무서워?”
이웃여자는 깔깔거리며 자기와 뒤바뀐 나의 두려움을 하찮아했다.
밤이면 종종 아파트 주변을 걸으며 지인들과 통화를 했다. 낮 동안 바빠서 받지 못한 전화에 일일이 답을 하는것이다. '어! 뭐지?' 며칠 전부터 육각 정자에서 피리를 부는 남자가 보인다. 정자는 아파트 조경으로 만든 인공시냇가 옆이다. 분수대의 물이 흘러가는 작은 시냇가, 그 물길을 따라 수양버들과 수초들이 빼곡하다. 그래서 육각정자는 마치 시골마을의 우물을 연상하게 한다. 그나마 버스 정류장이 붙어있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풍경이다. 가로등 몇 개로 이어진 둘레 길은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런 정자에 중년 남성이 피리를 불고 있다? 아마도 악기 연습 차 나왔을 테지만 고전 영화에서나 봄직한 풍경임에는 틀림없었다. 나는 남자를 지나 쭉 이어진 놀이터 주변을 지나는데? 흰 옷을 아래위로 입은 여자 아이가 홀로 그네를 타고 있었다. 밤 10시가 넘었는데 아이 혼자? 저녁이면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아 방범 CCTV만 돌아가는 음침한 이곳에… 아름드리나무만 우거져 보이는 놀이터에… 여자아이 혼자 왜 그네를 타고 있지? 그것도 흰옷을 입고…,
나는 통화 중에 있는 친구에게 현재의 풍경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사진을 찍어 보내보라고 한다. 나는 남자의 곁을 지나면서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이 왠지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 같아 먼 거리에서 은근슬쩍 동영상을 찍었다. 그리고는 장소를 옮겨 그네를 타고 있는 여자아이를 먼 거리에서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는 친구에게 전송했다. 동영상과 사진을 본 친구는 흐릿하게 나온 남자의 실루엣과 희미하게 깔린 피리소리, 또 흰 옷 입은 여자아이가 높게 그네를 타고 있는 형상 모두가 잘 느껴진다고, 자지러지듯 웃으며 이 무슨 시추에이션이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무섭지?”
“와~ 너희 동네 괴상하네. 왜 네가 괴담을 즐기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네.”
나는 1 시간이나 아파트주변을 배회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열중일 뿐, 주변의 눈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나와 그들은 서로에게 이해하지 못할 흐릿한 실루엣과 그네 타는 소리, 피리소리, 전화통화 소리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