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 권분자

by 권작가

여우, 커피2.jpg


눈빛


권분자



킬리만자로산産 커피는

마른웃음이 미끄러지는 속도로

노을에 익어가더니

여우의 내장 지나와 내 목젖을 적시고 있다


탄진의 꽁보리밥 비벼 드시고

지하갱도로 내려가시던 아버지

배고파 실눈 뜨고 잠든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그 눈빛이 건네는 맛을 닮은 커피


새우 같은 잔상들 입에 삼킨 나는

흰수염고래 지상에서 가장 크고 긴 똥이

항문 빠져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램프의 심지로 닳아가고 말았던 거였나

참! 비싸기도 하다는 여우똥커피는

노을 뭉친 삶의 향기를 닮았다


적당한 온도에서 부글거리다

들끓는 파리떼 속삭임도 들리는 저녁

아버지 손끝에서 넘겨지던 닳은 삽날 같은 지폐처럼

며칠 전단지 붙인 일당이 손 빠져나가서

여우똥 맛을 살 수 있다면

아버지 눈빛 향기에 목젖 달굴 수 있다면


킬리만자로 표범의 눈빛 피해 달아나다

오늘은 묵힌 시詩의 똥을 누는

나 가난한 여우가 되어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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