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무렵의 아이는 종종 자기 전에 걱정을 털어놓곤 했다.
어느 날은 우리 집에 괴물이 들어올까 봐 무섭다고 했고,
또 어느 날은 혼자 길을 잃어버리면 어떡하냐고 물었다.
아이의 사소한 요청 하나 받아줄 여유가 없을 땐,
‘왜 얘는 일어나지도 않을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사실 나 역시 오래전부터 ‘걱정인형’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도 새로운 일을 앞두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머릿속으로 상황을 몇 번이고 그려보고,
혹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미리 떠올려 보기도 하고,
미리 준비해보곤 한다.
‘이런 것까지 날 닮았나.’
아이에게서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나 고치고 싶은 모난 구석들이 보일 때,
너무 잘 알아 이해되는 마음만큼 그래서 답답한 마음도 꽤 커다랗게 자리한다.
그래서 어느 날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도 사실 걱정인형이야.
우리 둘 다 걱정인형이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근데 엄마가 살아보니까,
걱정한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더라.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걱정할 시간에 더 놀 걸,
그 시간에 잠을 더 푹 잘 걸.”
그리고 농담처럼 덧붙였다.
“엄마가 사실 지금 걱정이 하나 있어.”
“뭔데?”
“엄마가 하품하다가 입이 찢어지면 어떡하지?
방귀 뀌다가 엉덩이가 터지면 어떡하지?”
아이는 한참을 빵 터져 웃더니 말했다.
“아 뭐야, 엄마. 그냥 얼른 자자.”
며칠 뒤였다.
남편과 아이 둘이 썰매장에 갔던 날, 아빠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몇 바퀴를 돌며 중얼거렸다고 한다.
“아, 주차할 데가 없을 것 같은데…”
그때 아이가 말했다고 한다.
“아 아빠~ 걱정 좀 하지 마~
걱정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아.
주차할 곳이 있을 거야.”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조금 웃었다.
그래.
그때의 아이는 여섯 살이었고,
그때의 나는 아직도 걱정이 많은 엄마였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나는 그 문장을 여러 번 확인하게 됐다.
아기 때 온몸에 퍼진 동그란 습진에 수시로 로션을 발랐던 날도,
아이가 동생이 태어날 무렵, 불안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했던 습관들도,
모든 처음 겪는 일들 앞에서 불안했던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제자리를 찾았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아이의 모습이
시간의 힘이 보태져 결국은 나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 장면들을 일부러 차곡차곡 마음에 꾹꾹 담았다.
엄마의 경력이 쌓일수록 조금씩 더 가벼워졌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잠깐 마음이 흔들리다가도 이내 생각한다.
‘그냥 넘겨.
괜찮아지겠지 뭐.’
어쩌면 걱정 많은 아이 덕분에 나 역시 걱정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아이의 마음에 작은 걱정이 떠오를 때마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들려주어야겠다.
봐. 그 걱정, 결국 다 지나갔지?“
우리는 그렇게
하나씩 지워가면 된다.
하나씩 지나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