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미국

눈물로 하루를 마감하는 오스틴 정착

by 화면 뒤의 작가

평생을 한국이라는 익숙한 궤도 안에서 살아왔다.

마감 시간에 쫓기고 화면해설 작가일을 기웃거리며 아이 케어하는 일상이 내 삶의 전부일 줄 알았다.

적당히 안정적이었고,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엄마, 작가의 삶. 하지만 인생은 가끔 예고도 없이 커브를 튼다.

"우리 미국 갈 것 같아."

그 한마디에 나의 세계는 순식간에 재편되었다. 텍사스, 그중에서도 오스틴.

이름조차 생소했던 그 낯선 도시는 그렇게 나의 새로운 주소가 되었다.


낯선 공기, 더 낯선 일상


비행기 바퀴가 오스틴 땅에 닿는 순간 느꼈던 그 막막함을 기억한다.

화려한 뉴욕의 고층 빌딩도, 로맨틱한 샌프란시스코의 바다도 아닌,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과 뜨거운 햇살이 나를 반겼다.

한국에서의 나는 커리어가 있는 워킹맘이었다면, 이곳에서의 나는 운전하나 제대로 못해 쩔쩔매는 서툰 이방인일 뿐이었다. 익숙했던 모든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사소한 행정 절차 하나에도 온 신경이 곤두섰다.


정착이라는 이름의 사투


초반 정착과정을 겪는 현재는 '설렘'보다는 '생존'에 가깝다. 텅 빈 집에 가구 하나를 채워 넣는 것도, 아이의 학교 투어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영어를 듣고 헤매는 것까지 모두 거대한 숙제 같았다.

무엇보다 힘든 건 무력감과 상실감이다. 한국에서 쌓아온 나의 커리어와 관계들이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멀어 보일 때, 나는 이유 없는 허기를 느꼈다. 텍사스의 유명하다는 바비큐를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 말이다.

도착 후 첫 일주일은, 정말이지 매일 울다가 잠이 들었다. 시차로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자니 앞으로의 막막함이 꼬리의 꼬리를 무는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삶은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른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아이 도시락을 싸고, 남편 출근 때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주며,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간다.

노을 지는 오스틴의 하늘을 보며 아주 조금씩 이 도시의 박자에 내 발걸음을 맞춰가고 있다.


이제부터 마흔 중반, 낯선 땅에서 어떻게 다시 '나'를 찾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 될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오스틴, 하지만 이제는 '어쩌면 오스틴이라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서툰 정착기를 적어본다.

작가의 이전글방송작가를 12년 해봤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