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수요일, 비가 오는 저녁에 작은 소극장에서 열렸던 포럼은 EIDF 사무국장을 맡았던 형건 PD의 진행으로 김용범 건축가와 함성호 건축평론가 노은주, 임형남 건축가 부부의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이 됐다.
추사의 글귀를 통해 던지는 집이 갖는 의미에 대한 화두와 문화주택부터 아파트로 이어지는 한국의 건축사적인 흐름, 그리고 <건축탐구 집>의 진행자이자 건축가로서의 부부가 보는 건축의 의미들에 대한 발제가 이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구성자 간의 질의응답과 관객과의 대화 등이 이어졌던 행사.
시간 제약 상의 한계로 인해 관객과의 질의응답보다는 발제와 대담이 꽤 많은 분량을 차지했던 행사였지만, 건축과 관련한 전문가들이 모여 건축에 대한 이야기만 할 수 있는 포럼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독특했던 이 포럼에서 주목해서 봤던 지점은 노은주, 임형남 건축가 부부의 발제와 포럼 내 대담으로 이어진 과정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EBS의 소재 선택과 축적의 방식이었다.
우선 노은주, 임형남 건축가 부부의 발제는 프로그램 진행자로서의 부부의 캐릭터가 어떻게 프로그램에 녹아들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자신들이 설계한 건축물의 이야기와 그와 같은 설계를 했던 이유와 배경 등 과정의 소개는, 단순하게 결과만을 놓고 보게 되는 건축물에 스토리텔링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론의 일환으로써도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꼭 굳이 유명한 건축물이 아니더라도, ‘공간’으로서의 건축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소재로서의 건축을 <건축탐구 집>을 통해 보여줄 수 있었던 건, 그 이야기를 끌어내가는 프레젠터로서의 건축가들이 그 소재에 대해 충실히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한 구성임을 대담 과정에서 보여줬던 것이다. 건축이라는 정적인 소재가 휴먼성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건, 이런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프레젠터의 발굴과 구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과정이 가능했음을 보여줬던 건 후반부에 진행됐던 발제자 간의 대담 시간이었다. 사회자 역할을 맡았던 건축과 출신 형건 PD. 그가 자신의 전작이었던 <행복한 건축> 다큐멘터리에서 다뤘던 건축(사와다 맨션)의 이야기를 다시 되살렸을 때, <건축탐구 집>과 같은 프로그램이 어떻게 탄생이 가능했을 지를 엿볼 수 있었다.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는 유명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낯선 소재를 분석하고, 그것의 의미를 향유하는 과정들이 축적이 돼 왔기에 건축과 같은 생활적으로는 친숙하지만 TV 다큐멘터리적으로는 낯선 소재로도 다큐멘터리적인 구성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사와다 맨션이라는 건축물이 단순히 일반인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온 아파트란 차원에서 머무는 대신, 모두가 함께 지어올림으로써 만들어낸 ‘공간의 의미’라는 맥락 안에서 이해가 됐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즉 건축이 건축이 아닌 ‘공간’으로써 확장 돼 이해가 됐기에, 이를 바탕으로 건축이 만들어내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 제작이 가능해진 셈이다.
작은 포럼의 구성원이 생각보다 적극적인 다큐멘터리 소비층하고는 거리가 멀 2030이 대다수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관객이자 포럼의 참여자로서의 2030이 던지는 질문 역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아파트에서의 공동생활에 대한 궁금증이나 미래 세대인 학생들에게 주거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과 같은 것이었다. 건축가들의 것처럼만 여겨지기 쉬운 건축이 사실은 아파트와 같은 생활의 문제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고, 그렇기에 얼마든지 다양한 각도에서의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부분이었다. 주로 부동산의 개념으로 고착화 돼 온 주거의 문제가, 부동산이란 틀을 벗어나 생활의 문제로 전이될 경우 얼마든지 다른 맥락에서의 이야기로 확장 돼 소비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의식주의 차원에서의 주(住)의 문제는 사람들의 삶의 영역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TV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다소 부차적이거나 단순화 된 방식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때 시대를 풍미했던 <러브하우스>가 시대를 거슬러 <구해줘 홈스>와 같이 더 확장적인 개념으로 진화하곤 하지만, 예능적 차원에서 구현되는 ‘주거’에 대한 이야기는 시각적인 차원의 변화 등에 초점에 그 중심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 EIDF가 주최했던 <도시의 건축 –집의 온기> 포럼은 집에 대한 근원적인 의미부터 한국의 아파트사, 건축과 휴먼의 결합 가능성 등 새로운 방식의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이 아직 열려있음을 보여줬고, 이것이 새로운 세대에도 충분히 공감을 줄 만한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