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EIDF 역시 이전의 운영방식과 마찬가지로 그해의 주제의식에 맞춰 작품들을 소분류로 나누고, 이를 기준으로 여러 개의 영화들을 분류해 여러 영화들을 선보였습니다. 올해의 경우 페스티벌 초이스(경쟁), 월드 쇼케이스, 키즈 다큐, 동물을 만나다, 도시, 그리고 건축, EIDF-고양 모바일 단편 경쟁, 한국 다큐멘터리 파노라마, 아시아의 오늘, 다큐 속 무형유산, 가족의 초상, 다시보는 EIDF , 예술하다로 영화들을 분류해 선보인 바 있죠.
올해의 수상작들의 경우 다음과 같습니다.
- 대상 : <허니랜드> 감독: 류보미르 스테파노프, 타마라 코테프스카
- 다큐멘터리고양상 : <나폴리 셀프카메라> 감독: 아고스티노 페렌테
- 심사위원특별상 : <위기의 30대 여자들> 감독: 쇼쉬 슐람, 힐라 메달리아
- 시청자 관객상 :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 감독: 마리안나 야로프스카야
- 월드비전특별상 : <마이 리틀 댄싱 슈즈> 감독: 브라이언 크리스토퍼 브라질
저는 이 중에서 페스티벌 초이스 부문의 <위기의 30대 여성들>과 도시, 그리고 건축 부문의 <빛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 다큐 속 무형유산 부분의 <장인의 유산 + 경극을 따라서> 이렇게 세 편을 간단하게 소개해볼까 합니다.
< 위기의 30대 여성들 >
소쉬 슐람 감독의 작품인 < 위기의 30대 여성들 >은 다소 극화된 형태로 전개되는 휴먼 다큐다. 성뉘, 즉 ‘남겨진 여성들’이라는 모멸적인 이름이 붙은 중국의 고학력 30대 여성들은, 가족과 사회 더 나아가 국가로부터 결혼과 가족에 대한 압력을 끊임없이 견디며 살아간다. 영화가 쫓고 있는 이들은 대학을 나와 사회에서 방송진행자, 교수, 변호사와 같이 자신의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주요 구성원이지만 가족으로 상징화되는 사회와 국가의 부단한 압력 속에서 신음하듯 ‘결혼을 위해’ 살아간다. 국가가 주최 내지 장려하는 소개팅이 열리고, 부모가 자신의 자식의 신상정보를 적은 종이를 들고 서 있는 ‘시장과도 같은’ 부모 중매 장이 있는 나라. 거기에서 남자와 여자들은 그들 간의 사랑보다는 그들의 배경 – 키, 외모, 나이, 직장부터 그들의 고향에 이르는 수많은 정보들 –을 끊임없이 재단하며 가족 성업으로서의 결혼을 위한 ‘협상’을 지속해나간다. 영화는 그렇게 그들이 받고 있는 압력을 굉장히 가까운 시선에서 끊임없이 담아냄으로써 정신과에서 심리 상담까지 받으며 눈물을 흘리는 그들의 상황을 근접거리에서 담아낸다.
영 딴 나라의 얘기처럼 들리면서도 동시에 어디선가 알 수 없을 ‘기시감’을 느끼게 해주는 건 아마도 영화가 담고 있는 현실과 우리네의 현실이, 다른 듯 비슷한 탓일 것이다. 2030에게 미래를 위해 결혼과 가정의 구성을 권하는 건 비단 중국 만의 얘기는 아닐 테니 말이다. 같은 문화권으로서 가족, 특히 부모에게 약한 자녀의 모습 역시 기시감을 자아낸다. 얼핏 봐도 보이는 다소 인위적인 연출 포인트들이 눈에 거슬리지만, 여성의 결혼이란 소재를 통해 오늘날 살아 움직이는 중국 사회의 단면 – 많이 발전한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보수적인 사회상 - 을 포착해낸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다큐멘터리.
< 빛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 >
스페인 산탄데르 보틴센터의 탄생 과정 전반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더 샤드, 퐁피두 센터, 휘트니 미술관 등을 설계한 것으로 명성이 높은 렌조 피아노란 유명 건축가의 일대기라고 생각되기 쉬운 영화 제목이지만, 영화는 그보다는 하나의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건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특징으로는 주역은 렌조 피아노지만, 주연이 있는 1인극보다는 군상극에 가까운 형태로 전개되는 점. 그렇기에 건축과 연관을 맺고 있는 굉장히 다양한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렌조 피아노 본인은 물론 건물이 지어지는 것에 회의적인 지역 주민들부터 길어진 공사기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된 건축주, 렌조 피아노 건축 설계 회사의 직원들, 지역 정치인들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건축물의 건축 과정을 둘러싸고 나올 수 있는 모든 목소리들로 이어지는 ‘불협화음’이 영화를 통해 한데 어우러져 터져 나온다. 전혀 새로운 건축 소재의 도입 등으로 인해 길어져만 가는 건축기간, 늘어나는 건축비, 해변의 미관 문제부터 한 지역 사회의 ‘공간’을 특정인이 소유하는 것에 대한 의견 차이까지 새롭고 도전적인 건축물이 가져올 수 있을 다양한 이야기들을 영화는 담아내고 있다. 이야기를 들으며 지어지고 있는 건축의 탄생을 지켜보다보면 완성된 건축과 그 공간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주는 메시지는 그렇기에 더욱 남다르게 느껴진다. 도시재생과 같이 ‘공간’의 사용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한 시점에서, 부동산 공화국이지만 공간과 건축에 대한 고민이 활성화되지 않은 한국 사회의 공동체에 유의미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다큐.
< 장인의 유산 + 경극을 따라서 >
짧은 두 편의 다큐멘터리인 경우 묶어서 상영하는 EIDF의 상영 방식에 맞춰 페어링 된 다큐멘터리. 철사 가공과 경극이라는 전혀 다른 소재의 이야기를 묶어낸 듯 하지만, 잊혀져 가는 전통을 지키려는 ‘장인’들의 노력과 영상미 적인 부분에 힘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 조합이기도 하다.
<장인의 유산>. 15분짜리 짧은 단편 다큐멘터리로 교토의 철사 공예사 부자(父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찌보면 일본 문화의 클리셰적인 부분으로 보일 수 있을 장인의 공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럼에도 섬세하게 만들어진 완성품을 지켜보는 즐거움만큼은 분명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그 짧은 러닝타임 시간에도 긴 시간을 함께 하며 살아가는 부자 간의 가치관의 갈등과 쇠락해가는 업을 지탱해나가는 장인들의 삶에 담긴 에피소드마저 담아내고 있다. 부인이자 어머니이자 동시에 또 한 명의 철사 공예 장인을 잃고서도 당일 아침 묵묵히 공방을 다시 열며 장인의 방식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열정적인 장인들의 이야기가 인상적.
<경극을 따라서>. 52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로 중국 시골 전역을 순회하며 돌아다니는 한 경극단의 시골 방문기를 담고 있다. 특징이라면 화려한 경극 공연 전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 경극을 그려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 낮은 수입과 정처 없는 떠돌이 삶의 고됨, 경극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아냄으로써 경극 분장 뒤에 숨겨진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준다. 경극이라는 중국의 대표적인 무형유산 자체도 전통의 쇠락길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 한 때는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모두의 즐거움이었지만, 이제 그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는 것이 암시된다.
두 다큐멘터리가 담고 있는 전통 문화와 그 문화의 쇠락에 대한 이야기는,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영화가 세대를 담고 있다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무너져가고 있는 전통에 대한 고민의 화두를 던지기 위한 것이 아닐까란 추측까지 들 정도. 동시에 두 영화 모두 미래를 얘기하지 못한다는 것 역시, 답이 없는 현 상황에 대한 타개책이 없다는 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 저는 이렇게 비록 세 편 정도만 짧게 소개하지만 이외에도 굉장히 많은 영화들이 EIDF를 통해 소개되었고, 이를 접할 수 있는 경로들도 열려 있는 편입니다. 혹시라도 제가 소개해드렸던 다큐멘터리들에서 뭔가 새로운 ‘시선’의 가능성을 엿보셨다면 직접 더 많은 가능성들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