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수능이 100일도 안 남았던 시점이었고, 모의고사를 봤던 날이기도 하다.
아침에 와서 자기 자리에 앉아 시험에 응시하기 시작했다. 언어, 수학 시험을 치렀고, 점심을 먹은 뒤, 영어 듣기평가에 임했다. 마지막으로 과학 탐구 문제를 풀고. 이후엔 교실의 시험 대형을 원래의 교실 본모습으로 원위치시켰으며, 청소까지 빠르게 진행했다. 그러고 나면 하교다. 그날의 일정은 끝!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우리 반은 참 인상 깊었다. 반 인원이 무려 49명. 선생님이 들어오면 50명이다. 여름에 체육 수업 후 들어오면 말도 못 할 정도다. 작은 반 안에 땀 냄새가 가득 찬 상태에서 방귀까지 뿡뿡 뀌면 질식사가 불가능할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조합의 독가스(?)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졸업한 나 자신이 용하다.
49명의 인원이 한 반에서 시험 칠 땐 정말 힘들다. 워낙 아이들이 많다 보니, 한 줄에 배치되는 인원도 많을 수밖에 없었고, 낑낑 끼어서 시험을 쳐야 하기 일쑤였다. 특히나 모의고사에 내신까지 수없이 시험을 몰아쳐야 하는 게 고3이다. 사설 모의고사까지 합치면 쳐야 할 시험이 꽤 많았다. 그때마다 49개의 책상과 의자를 시험 대열로 맞추고 다시 제자리로 옮기는 것도 생각보다 고된 노동이었다. 거기다, 뒤로 밀어서 청소하고 밀대로 교실 바닥을 닦은 뒤, 책상과 의자 모두를 또다시 원상 복귀시키는 것까지 고려하면,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바로, 모의고사가 끝나고 청소하기 일보 직전에 터졌다.
“청소 끝나고 남자 반은 모두 남으세요.”
냉랭하고 차가운 목소리의 방송이 나왔다.
왜 남으라고 했냐고? 알고 보니 점심시간에 일이 하나 터졌단다.
점심을 그날따라 맛나게 잘 먹은 모 반의 모 친구들. 그 아이들은 밥을 너무 잘 먹은 나머지, 되게 신이 난 모양이다. 왜 그렇게까지 즐거웠는지는 이해가 되진 않지만. 하여튼, 그런 기분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 먹은 식판들을 모으고 또 모아, 바닥에 쫙 깔고, 그 위에 식판을 또 깔고, 얹히고……. 식판을 그렇게 위로 점점 쌓아, 마침내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고 만 것이다.
작품명은 아마도 ‘고3의 현재 심정’이지 않았을까?
어이가 없었다. 어떤 미친놈들이 그런 일을 저지른 건지……. 우리들의 하루 삼시세끼에 있어 두 끼나 챙겨주시는 분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나? 철없는 놈들이 안쓰럽더라. 하여튼 그 일을 저지른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고 3 남자 전부 남으라고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청소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49개의 책상과 의자를 제자리로 옮기고, 뒤로 밀고, 다시 원위치하는 일 자체가 일반 청소보다도 시간이 더 걸린다. 모든 것을 다 끝내고, 책상을 원래대로 돌려놓던 과정 중에 마주하고 만다. 청소 따위를 빠르게 해내지 못해하고 질질 끄는 모습에 결국 더 빡쳐버린 학년 부장을 말이다.
그래, 화날 순 있다. 그런데, 책상을 옮기던 한 아이를 붙잡고 패기 시작할 때부터 나마저도 꼭지가 돌아버렸다. 강아지야, 너희 부모님은 안녕하시니? 등등 이건 욕도 아니었다. 귀여운 말에 불과했다. 주먹과 킥 모두를 다 활용할 수 있는 UFC 경기? 그것조차 아무 경기도 아니었다. 거대 피라미드를 만들던 범인도 아닌, 단지 조금 늦어진 청소로 일어나있던 친구를 본보기로 패기 시작한 그 모습은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온갖 욕설에, 주먹과 발길질까지. UFC 경기 직관하는 줄 알았다.
정말 죽도록 패던 모습에 화가 나서 “시발놈이 미친 거 아냐? 네가 사람 새끼냐!”라고 외칠 뻔했다. 이미 마음속의 분노가 폭발해 버렸던 상태니깐. 행동으로 나오기 일보 직전이었다. 말하기 0.001초 전에 마주한 담임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나선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어버린 담임선생님. 그의 모습을 보니, 차마 뭐라 말을 꺼내기가 그랬다. 아니, 그 청소를 누가 시키고 누가 감독 맡았겠는가? 그 사실을 떠올리면, 학년 부장이란 이유로 담임선생님 앞에서 본인의 분이 풀릴 때까지 팰 수 있단 말인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참지 않았을 거다. 그렇기에 후회된다. 우리 담임선생님의 자존심을 고려해서 참아냈다는 사실이. 선생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나서서 싸웠다면 어땠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행동했던 사실이 오히려 스스로를 초라하고 비겁하게 만들었다. 피하지 말고 차라리 부딪혔어야 했는데. 그래야 그 친구의 억울함을 풀어줬을 텐데. 돌이켜볼 때마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참고로, 이와 다른 사건이지만, 모 반의 모 선생님은 하키채로 애를 때리다가 고막을 나가게 하고, 돈 던져주면서 “병원이나 가라”라고 하는 쿨가이 쌤도 있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정말 학교 가는 일 자체가 너무 싫었다. 빨리 수능이나 쳐서 이놈의 학교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을 정도로 학교에 남아있던 일말의 정까지 사라졌다.
오로지 공부가 중요하기에, 친구의 어머니 조문도 막으려는 선생님.
보충 수업 빠진다고, 모든 학생 앞에서 무시하고 경멸하는 욕까지 하는 선생님.
자신의 분이 풀리기까지 애를 패는 선생님.
http://brunch.co.kr/@kc249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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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들을 마주하니, 공부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도 않더라.
사실 그게 나의 핑곗거리일 수도 있겠다만.
학생 때 겪은 사건들을 떠올려 볼 때, 학생 인권 조례가 만들어져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요새의 상황을 보아하니, 뭐든지 하나가 우세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몸소 체감하게 되었다.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829493
http://www.uj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30577
https://www.yna.co.kr/view/AKR20230130146000530
교권과 학생 인권, 둘 다를 조화롭게 만들 방법은 없는 걸까?
아니, 애초에 교권, 학생 인권을 논하기 전에, 서로서로 배려하는 게 그토록 어려운 걸까? 학생은 학생답게, 교사는 교사답게 지내는 그런 분위기를 형성할 순 없단 말인가?
갑갑하다.
학교가 너무 싫었고, 떠나버리고 싶음이 가득했던 나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괜찮은 분위기의 학교가 많이 생기길 바랄 뿐이다. 언젠가는 [학교가 너무 좋았습니다.]라는 글을 쓰는 사람이 나타나는 그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