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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Jul 19. 2023

학교가 너무 싫었습니다 - 2

 군 대체 복무로 시골에서 지내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징할 정도로 많이 마주했던 게 있는데, 그건 바로 벌레다. 관사 침대에 누워있는데, 바닥에서 사사삭, 사사삭.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설마? 아니겠지? 그렇게 믿으며, 바닥을 보는 순간 ‘혹시나’가 ‘역시나’다. 생각보다 큰, 엄지발가락보다도 거대한 바퀴벌레가 관사 중간에 딱 자리 잡고 있더라. 그 당시 내 표정은 어땠을까? 여러분이라면 어땠을지 상상해 봐라. 아마도 바로 느낌이지 않았을까? 극혐 그 자체의, 혐오로 가득한 얼굴일 거라 충분히 예상해 본다. 그러곤 근처에 있는 물건 하나 잡고 바퀴벌레 잡으러 뛰어가겠지. 나 역시 그랬으니까.     


 바퀴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그 표정!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바퀴벌레를 직접 본 경험이 있기에, 벌레를 바라보는 타인의 표정을 목격하기도 했으니 충분히 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직접 마주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경멸이 한가득하였던 그 눈빛, 벌레를 보는 것도 아닌 재활용조차 허락되지 않는 쓰레기로 여기는 듯하며,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그 눈길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때 나에게 던지던 시선이었기에.        


 “저, 의대 지망합니다.”
     “이 성적으로 의대 갈 생각 한다고?”     


 3월 모의고사 성적이 전부 2등급인 녀석이 의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런 의문과 더불어 본인이 생각했을 때 어이가 없다는 걸 누가 들어도 느껴지게 하는 비꼼의 뉘앙스. 더불어, 징그러운 걸 바라보는 듯했던 고등학교 3학년 부장의 그 표정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지금까지도 눈을 감으면 생생히 기억할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나만 당했던 건 아니다. 그의 기준에서 공부를 못하는 누구라도 일상다반사로 겪었던 이야기다. 사실, 그조차도 하지 않고 투명 인간인 것처럼 취급하며 무시하는 게 매번이었다만. 반대로, 성적이 좋은 친구들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선보였다. 차라리, 공부라는 기준으로 엄격하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성실하거나 능력이라도 뛰어났다면 나는 이 글 자체를 쓰지 않았을 테다. 대학교 지원하고자 추천서를 부탁했을 때, 그가 던지던 말이 있다. “내가? 네가 알아서 써 와” 본인이 써줘야 하는 걸 학생한테 시키는 참다운 선생님 중 하나였다. 덕분에, 그 반 친구들은 스스로를 추천하는 글을 쓴다고 고생했지만. 뭐 그거 하나만 문제였다면 다행이었겠지만, 불행히도 아니다.     


 그런 선생님과 나 사이엔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의대 가고 싶다고 외치는 녀석.

 한 반의 반장.

 학교에 대한 불만을 점점 키우다 실제로 체제에 반항하기 시작하는 놈.      


http://brunch.co.kr/@kc2495/86 


 명문 대학에 많이 보내서, 교장, 교감 선생님께 인정받아 빨리 승진하여, 권력의 핵심으로 다가가고자 하던 학년 부장. 

 공부로 사람 그 자체를 확실히 판가름하며, 경멸과 무시가 무엇인지를, 사회가 얼마나 냉정한 곳인지를 미리 알려주던 선생님.     



 하필이면,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그 둘은 부딪히는 게 점차 잦아졌다. 거기다,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게 모의고사에서 점점 드러나고, 서울대학교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1학년 때에 비해 내신조차 초라해지니, 더더욱 깔보기를 일삼던 누군가 덕분에, 갈등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자존감이 낮았던 시절인지라,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나쁘게 여긴 게 오로지 나 자신 탓이라 생각한 적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절대 아니다. 그건 확신할 수 있다. 나한테만 그런 건 아니었으니깐.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굳이 싸울 이유는 없었다.     


 “의대 지망한다고?”
     “열심히 해라!”     


 그러면 끝날 문제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써달라고 말한 적도 없다. 오히려 나한테 많은 관심보단 내버려 두길 바랐으니깐. 묵묵히 바라봐 주기만 해도, 정말 고마운 일이고. 그 성적에 상위권 대학을 노리냐면서, 업신여기던 그.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을까?      


 그러다 사건 하나가 터지고 만다.      


 당시, 고등학교 방학은 말만 방학이지, 실제론 아니었다. 나와서 보충수업을 꼭 들으라고 했으니깐. 그래야 공부가 된다고. 나는 그게 싫었다. 안 그래도 부족한 건 많긴 하지만, 무조건 수업 듣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방학이라는 짧은 시간을 이용해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분석하고 채워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게 훨씬 낫겠다 싶었다. 선생님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보충 수업을 안 하면 게을러져서 공부하지 않고 힘 빠지지 않을까 하는 거였을 테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절대 아니었다. 의대 가고 싶어 하던 만큼, 방학이라고 신나게 놀 만한 처지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깐. 하지 말라고 해도 오히려 해야 했다.     


 그런 내 생각을 담임선생님과 깊게 나눴다. 그 누구보다도 유심히 듣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나의 결심과 태도를 확인했던 선생님은 이내 허락했다.      


 “그래, 혼자 공부해서 어떻게든 성과를 내보여라.”     


 깊은 남자 간(?)의 대화를 나눈 다음 날이었다. 쉬는 시간, 복도를 지나가던 중, 첨예하게 갈등이 쌓이고 쌓였던 학년 부장이 나를 보자마자,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야, 개새끼야.”
 “니가 그리 잘났냐?”
“새끼가.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할 것이지.”
    “니 놈이 그러고도 의대 진짜 갈 수 있나 보자.”     


 수많은 학생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말이다.     


     

 다행히, 그때 반박하거나 욕하거나 싸우거나 그러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잘 참아냈다. 결론은 하나였다. 어떻게든 증명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그때 했던 잡소리들을 침묵시킬 수 있다고 여겼으니깐.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더라. 주인공이 마왕을 무찌르고 멋진 영웅이 되어 명예와 행복을 모두 얻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10대 시절, 의대 진학에 실패했다. 하지만 인생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더라. 어떻게든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된 걸 보면 말이다. 조만간 이 이야기도 글로 다루어 보리라.     



 돌이켜보면, 아쉽다. 

 그 누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진 예측할 수 없다.

 고등학교 때 뛰어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엄청난 성과를 꾸준히 낼 수도 있고. 반면에, 고만고만했던 친구들이, 나이가 들면서 자신만의 업을 찾아 그 누구보다 큰 성공을 이룩할 수도 있다.

 물론 그와 반대되는 모습들도 존재하겠지만.     



 늘 다짐하는 게 있다.

 지금의 누가 어떤 모습이던, 어떤 상황이든, 절대 무시하지 말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묵묵히 바라보기로 말이다.     


 나보다 더 오래 살아왔던, 경멸과 업신여김, 깔봄으로 무장했던 그 선생님은 이런 중요한 사실을 지금이라도 깨달았을까? 아니면 여전히 아이들에게 같은 모습을 보이며, 수없이 많은 상처를 지금도 계속 안겨주고 있을까?       


 여담이지만, 학교에 대한 나의 진정한 분노는 수많은 학생 앞에서 나를 모욕했던 일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일어난 한 사건이 있다. 그게 나를 터지기 일보 직전에 이르게 만든다.       


 만약 그 일을 고3이 아닌 고1, 2에 겪었더라면, 학교가 너무 싫은 나머지, 어쩌면 내 발로 직접 걸어서 그곳을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영원히 돌아가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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