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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Feb 23. 2023

학교가 너무 싫었습니다. - 1

공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꽤 오래된 이야기다. 2008년의 일이니까. 고등학교에 야간자율학습이라는 게 존재하던 때다. 이렇게 말하니, “라떼는”의 향기가 강하게 풍기는 거 같아 독자들에게 죄송하다. 하여튼,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면, 저녁을 무조건 학교에서 먹고, 밤 9시 정도까지 강제로 공부해야 하던 게 야간자율학습의 본질이다. 본인에게 집중되는 장소에서 학습하고자 해도 그럴 선택권이 없던 시절이다.     

 일이 발생한 그날도 수학 문제집 하나 잡고 문제 풀기를 반복하던 차였다. 답지를 볼까 말까……. 유혹의 갈림길에 서 있던 순간, 허벅지 쪽에서 진동이 울렸다. 이거 진짜인가? 가끔은 진동이 안 오는 데도 온 것처럼 느껴져 문자를 확인하고 그랬기에 의심했다. 다행히(?) 이번엔  진동이 맞았다. 도착한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숨이 탁 막히더라. 간결하고 짧은 문구였다.


 “어머니, 돌아가셨다.”      


 친구가 보낸 내용이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중학교 내내 허물없이 지내던 소중한 이였다. 당연히 가야 했다. 하지만, 꽤 먼 곳에서 장례식이 이루어지던 만큼,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 부모님은 흔쾌히 동행하기로 하셨고, 더불어 친구의 소식을 듣고 가겠다고 하는 동료들까지 점차 늘어났다. 예상치 못하게 인원이 급증하면서, 다 같이 갈 시간을 맞춰야 했다. 부모님의 내일 일정, 친구들 각자의 사정 때문에,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시간이 확정 났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으로 말이다. 그때만큼 적절한 순간이 없었다. 어쩔 도리가 없기도 했고.     

 그때까지 야자(야간자율학습의 줄임말)를 빼고 도망친 날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런 건 있었다. 출석률 100%를 달성한 건 모범생의 마인드가 아닌가 여기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말로 도망치고 싶을 때 확 행동으로 옮기자는 마음으로, 끈기 있게(?) 버티고 또 버티던 중이었던 거다.

 하지만, 이 일은 별개다. 필요하다면 충분히 빠질 수 있다고 여겼다. 인생에 있어 우선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기에,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하지 못하는 건 가능한 일이라 판단했지만, 야자 담당 선생님의 생각은 달랐나 보더라. 나의 설명에 돌아온 말은 이랬다.     


 “뭐 하러 가냐? 그 시간에 공부나 더 해!”     


 그러면 안 되지만, 말 그대로 표현하자면, 빡 돌아버렸다. 화가 났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갑자기 화산처럼 분출하는 느낌이었다. 어른이고 뭐고, 선생님이고 나발이고, 그 순간 그 어떤 것도 가리지 않고 고함을 지르며 반박했다.     

 공부가 중요한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공부가 세상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건 많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런 걸 알려주시는 거 역시 선생님의 역할 아닙니까? 누군가의 조의를 표하러 가는 건 지금, 이 순간뿐입니다. 이런 일들은 살아가면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들 아닌가요? 수능에서 좋은 성적 받아서 상위 대학에 가야 하므로 지금 당장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희는 조문조차 하지 못하고 책상에 앉아서 문제지나 봐야 하는 존재인가요?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한 사람의 죽음을 기리는 일보다도 공부가 중요하다고 저한테 가르쳐주시는 거네요?


 그렇게 선생님과 한참 싸웠다. 이후,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모조리 무시하고 학교에서 나와 버렸다.      


 참고로, 그 당시 나의 내신 성적은 전교 5등이었다. 기말에는 전교 2등을 달성했다.     


 책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서 말한다.      

 아무리 완벽한 사람이라고 해도 인생을 살면서 비판이나 비난을 당하는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할 비판과 거부해야 할 비판을 가려내는 일이다. 부당하게 느껴지는 말을 그냥 ‘꿀꺽 삼켜’ 버려서도 안 되고,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 비판, 비난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받아들여야 하는 건 수용할 필요가 있겠지. 하지만 모든 걸 다 그렇게 할 순 없다. 왜냐고? 그 비판, 비난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며, 나의 사정을 늘 고려해서 하는 것도 아니니깐. 결국엔 그 사람의 생각으로만 놔둬야 할 때도 있다. 그의 생각을 인정하되, 딱 거기까지만 해야 하는 순간도 있을 거다. 그렇게 하는 게 나를 지키는 답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아쉽게도, 혈기왕성했던 10대의 나는 마냥 그러지 못했다. 그 말에 화내거나 과하게 반응하지 말고, 적당히 듣고 흘려 넘겼어야 했는데, 그땐 그럴 능력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의 주장은 그 자체로 인정하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아니면서 나 자신이 옳다고 여겨지는 일이었다면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 당시 나는 그런 유연함이 없었다. 그랬기에, 선생님이라는 자격에 걸맞지 않은 발언이라고 판단하자마자 싸우게 된 거다. 돌이켜봤을 때, 조금 더 깔끔하게 해결할 방안도 있었다고 여길 만큼, 어릴 때의 나는 참으로 미숙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선생님들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던 시발점이.

 그리고 학교가 점점 싫어지기 시작했던 때와 동일하다.

 나의 반항은 그렇게 당차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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