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월요일, 대구에 도착했습니다. 코로나 19로 대구에 의료진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들어와 파견을 갔습니다. 의사로서 당연히 가야하겠다는 생각에 요청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가겠다고 응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의사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접한 전염병이었기 때문입니다. 치료제가 없는 전염병이란 점에서 무섭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치열한 전염병과의 싸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란 생각에 더 걱정되었습니다.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확진자 분들의 검체 채취를 위해선 늘 방호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입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입고 나서가 문제였습니다. 코, 귀, 눈 주위가 조이면서 아픈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때론 고글이 관자놀이를 강하게 누를 때 편두통이 극심하게 와 속이 울렁거릴 때도 있었습니다. 또, 나의 온 몸은 땀으로 젖어가는 것은 기본이었고, 동시에 숨 쉬는 것 자체가 힘들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방호복은 계속 입어도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모든 일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저보다 더 힘든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코로나 19로부터 언제쯤이면 회복될 수 있을까 걱정하던 환자분들입니다. 한 장소에서 생활하며 검사하고 검사결과를 계속 기다려야 하는 그분들이야 말로 더 힘든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막연하게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을 보며 나의 일은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검체채취를 할 때, 전화로 상담할 때 한 마디라도 더 따뜻한 말을 나누면서 환자분들을 위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죄송했습니다. 가끔 “선생님, 저 때문에 고생하시죠? 미안합니다.”란 말을 환자분들이 할 땐 울컥했습니다. 저는 의사로서 해야 되는 일을 마땅히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또한 환자분들 중 그 누구도 이 질환에 걸리고 싶었던 분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미안할 필요 없습니다. 아무 걱정 말고 편하게 푹 쉬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죄송했습니다. 치료제가 없는 전염병에 대해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더 사과드리고 싶었습니다.
정말로 많은 분들에게 감사했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채워 준 수많은 의사, 간호사, 경찰, 군인, 공무원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제가 더 열심히 배우고,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편지 등 다양한 수단으로 감사함을 표현해 준 퇴소자 분들 덕분에도 더 힘내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4월 30일, 근무하던 생활치료소 종료로 대구를 떠났습니다. 사실 더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떠나는 게 아쉬웠습니다.
25일간의 시간은 저에게 있어서 끝이 아닌 성장한 저의 또 다른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긴장, 걱정, 두려움, 힘듬 등을 충분히 떨쳐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의료인으로 많은 분들에게 배우고, 더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25일 간의 시간을 잊지 않으며 더욱 성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더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