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저 밥 사 주세요!”
누구나 한 번쯤 받아볼 만한 요청이다. 이 말에 대해 나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답한다.
“그래, 그러자!”
느낌 왔으리라. 나는 소위 호구 선배다. 후배들의 밥 사달란 연락을 거절하지 못했기에.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때론 내가 먼저 연락해서 밥 한 끼 사줬기에, 호구가 아니라고 부정하긴 어렵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외아들이다. 형, 누나, 동생의 존재를 느껴보지 못하고 자랐다. 그러다 보니, 후배들이 친동생처럼 보였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더라. 근데, 양심상 안 사줄 수도 없었다. 너무 많은 선배에게 밥을 얻어먹고 다녔기에, 나 역시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다. 같은 직종에서 일할 동지로서 친해지고 싶기도 했고.
수많은 후배와 밥 한 끼를 했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후배가 두 명 있다. 참고로, 이 두 후배는 서로를 모른다. 아예 다른 친구들이고, 나에게 한 말 역시 각각 다른 자리라는 걸 감안했으면 한다.
그 두 후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배, 소고기 사 주세요.”
처음이었다. 밥 때문에 부담감을 느꼈던 순간이 이때가 최초였다. 돈을 버는 직장인이 아닌, 학생일 때 받은 요청이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소고기 한 번 사주면, 한 달 동안 라면도 하루에 한 번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정중하게 거절했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소고기를 사주진 않았으리라.
그런데 차이점은 있다. 첫 번째 후배는 사 주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면, 두 번째 후배는 첫 월급을 타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사주고 싶은 그런 감정이 들게 하더라. 과연 이 두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었던 걸까?
졸업하기 전, 나는 반드시 시험 하나를 치러야 했다. 바로 국가고시다. 이 시험을 쳐서 합격해야 면허증을 부여받고, 해당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1년에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지는 시험인지라, 많은 이들의 응원을 들을 수 있다. 그런 격려 중 하나가 바로 롤링 페이퍼인데, 소고기를 사달라고 했던 두 번째 후배의 글이 나를 설득했다.
지금의 나도 정말 가끔 먹는 그 비싼 소고기를 사주고 싶게 만들었던 그 마법의 글을 지금 여기서 공개하겠다. 어떻게 꼬드김을 당했는지 하나하나 같이 분석하자.
형 접니다.
신입생 때부터 밥, 커피를 막론하고 많이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2년 동안 너무 많이 사주셔서 그런지, 그 이후 2년 가까이 형께 많이 얻어먹지는 못한 것은 바로 제 불찰입니다.
(응원)
형과 소고기 집에서 보는 걸 기대하겠습니다.
이유를 조금은 알겠는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선 글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한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글쓰기]에선 글은 독자와의 대화라고 언급한다. 즉,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독자다. 그러나 [유혹하는 글쓰기]의 저자 스티븐 킹은 독자의 중요성을 뛰어넘어, 하나를 더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 유혹하는 글쓰기 332쪽 -
그렇다. 독자만큼 저자 자신도 중요하다! 그걸 스티븐 킹은 말하고 싶었던 거다. 내 후배는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었는지 알 수 없다. 읽지 않았다면, 그는 어쩌면 천재 작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과 독자인 나를 둘 다 만족시키는 글을 써 내려갔기 때문이다. 자주 보지 못해 아쉬웠다는 걸 표현하며, 나와의 관계를 더 잘 지내보고 싶다는 어필과 함께, 그 관계를 소고기집에서 이루고 싶다는 자신의 목적까지! 롤링 페이퍼 하나로, 그는 이 모든 걸 만족시켰다.
물론, 아쉬운 점이 있다. 선배라는 독자를 향한 응원이 글의 중간에 들어가 있다. 현재 선배의 상황은 국가고시를 앞두고, 긴장한 상태다. 통과할 수 있을지 없을지 매일 걱정하며 공부하는 선배를 응원으로 먼저 기쁘게 하고, 이후에 더 잘 지내고 싶은 마음과 함께 목적인 소고기를 어필했다면 이 글은 정말 완벽함 그 자체로 남았으리라. 하루에 라면 반 개를 끓여먹는 한 이 있더라도, 최초로 소고기를 사준 후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응원과 목적이 둘 다 잘 들어가 있으니, 꽤 괜찮은 글이긴 하다.
여기까지만 해서, 소고기를 사줄 만큼의 호구력을 지니진 않았다. 그럼. 이 뒤에도 설득한 요인들이 있겠지? 더 이야기 나눠보자.
소고기를 먹고자 하는 열의가 가득했던 우리 후배! 롤링페이퍼를 쓸 때 고민을 꽤 한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는 뻔하고 진부한 응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국가고시는 제가 응원해도 형은 힘도 안날 겁니다.
그리고 힘든 건 금방 지나갈 겁니다.
여기 웬 미친놈이 있지? 처음에는 그렇게 여겼건만, 한국말은 역시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그래서 관점을 살짝 바꿔서 저는 형의 첫 월급을 응원해보려고 합니다.
참신하다. 국가고시는 어차피 합격할 거니깐, 그건 걱정하지 말고, 예정된 내년의 월급부터 생각하자는 거 아니겠는가? 대단한 놈이다. 신선한 관점으로 선배를 놀라게 하고, 정신을 못 차리게(?) 또다시 관점을 전환한다.
용광로가 떠오르는 시뻘건 숯불 위에, 아름다운 불판, 녹아내리는 소고기,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입니까?
선배에게 제안할 만큼, 우리 후배는 평소에도 소고기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정말 열심히 관찰한 게 분명하다.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말에 공감할 만큼, 소고기 굽는 걸 기똥차게 잘 표현했다.
그리고 그는 필살기를 터트리고 만다.
1년 = 12달 = 12번의 월급!
저는 형의 월급 덕분에 1년 동안 12번 설렐 예정입니다.
놀랄 게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또 놀랐다. 빠른 관점 전환을 통해서 나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고, 그 관점 전환들이 알고 보니 연결되는 내용이라니! 예정된 내년의 월급은 우리가 만날 소고기이며, 그 소고기는 1년 12달 12번의 월급을 통해 최소 12번이나 나의 배를 소고기로 채울 수 있으니, 나의 행복을 위해, 지금 당장 국가고시 통과를 위한 공부를 하세요! 최근에 나온 드라마 작가들보다 복선을 까는 능력이 대단한 건 확실하다. 거기다 소고기를 눈앞에 연상시킨 그 능력에도 탄복했다.
‘선배에게 어떤 응원을 할까?’의 고민과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한 ‘소고기’가 결합하여 재밌는 글을 만들어낸 후배의 관찰력에 박수를 보낸다. 후배 머리 한 대만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신선한 글이다.
독자와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면서, 소고기와 응원을 적절히 조합시켜 만들어낸 신선하면서도 당황을 만들어내는 글. 이 글의 가장 큰 매력은 솔직함이다. 이렇게까지 직설적이어도 되는지 걱정이 되긴 한다. 하지만, 유명한 작가들이 글은 진실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굳이 천박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평이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쓰라는 것이다. 낱말을 선택할 때 기본적인 규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일 먼저 떠오른 낱말이 생생하고 상황에 적합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 낱말을 써야 한다.’
- 유혹하는 글쓰기 141, 142쪽-
사실적이고 공감을 주는 대화문을 쓰려면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한다. 망치로 엄지를 내리쳤을 때 내뱉는 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점잖은 체면 때문에 ‘이런 제기랄!’ 대신 ‘어머나 아파라!’라고 쓴다면 그것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 유혹하는 글쓰기 229쪽 -
물론, 솔직함도 지켜야 할 명확한 선이 있다는 건 잊어선 안 된다.
자칫하면 고소당하거나 어느 화창한 아침에 우편함을 보러 가다가 총에 맞기 십상이니까
- 유혹하는 글쓰기 233쪽 -
다행히(?) 후배의 진실함은 총을 맞을 만큼 큰 문제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었다.
미국소나 호주 소는 자주 만나봐서 신토불이 코리아 카우의 맛을 보고 싶습니다.
미국보단 한국이 낫다는 걸 말해주는 정도야 뭐. 그래! 어떤 소고기를 먹고 싶은지 명확히 말하는 게 차라리 맘 편하겠다.
내 후배의 글은 누군가에겐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와 독자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친한 정도가 꽤 높아서 이 글은 불쾌하기보단 귀엽게 다가온다. 정말 볼살 꼬집어서 턱 끝까지 내려버리고 싶은 그런 후배다.
마지막으로 후배의 글을 합친 모습으로 보여주겠다.
형 접니다.
신입생 때부터 밥, 커피를 막론하고 많이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2년 동안 너무 많이 사주셔서 그런지, 그 이후 2년 가까이 형께 많이 얻어먹지는 못한 것은 바로 제 불찰입니다.
어차피 국가고시는 제가 응원해도 형은 힘도 안날 겁니다. 그리고 힘든 건 금방 지나갈 겁니다. 그래서 관점을 살짝 바꿔서 저는 형의 첫 월급을 응원해보려고 합니다.
용광로가 떠오르는 시뻘건 숯불 위에, 아름다운 불판, 녹아내리는 소고기,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입니까?
1년 = 12달 = 12번의 월급! 저는 형의 월급 덕분에 1년 동안 12번 설렐 예정입니다.
미국소나 호주 소는 자주 만나봐서 신토불이 코리아 카우의 맛을 보고 싶습니다.
형과 소고기 집에서 보는 걸 기대하겠습니다.
글의 완벽성을 따지면 문제가 분명 보인다. 생략해도 되는 접속사도 눈에 띈다. 좀 더 자연스러운 단어로 대체할 수 있다. 원본 글은 문단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기에,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읽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스티븐 킹이 말한 것처럼 “꼭 완벽할 필요가 있을까?” 독자는 오로지 나다. 독자인 나를 응원해 준 후배가 고마웠고, 소고기 사달라는 걸 본인의 논리대로 표현한 후배가 귀여웠다. 그거면 된 거 아니겠나? 나에게만큼은 정말 완벽한 롤링페이퍼다.
결론적으로, 두 번째 후배에게 소고기를 사주고 싶었던 건 첫 번째 후배와 달리 ‘다르게’ 말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후배는 말로, 두 번째 후배는 글로 나에게 생각을 전했으며, 두 번째 후배가 나랑 좀 더 친했기도 했지만, 그런 요인들을 다 제외하더라도 두 번째 후배의 설득에 넘어갔으리라.
이 글은 정말 매력적인 글이다. 글쓰기 하나만으로 소고기 얻어먹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글이다. 독자와 저자가 모두 만족할 만한 방향을 고려하고, 평소에 관찰을 많이 해서 신선한 관점을 만들어내며, 적당한 선의 솔직함을 잘 담아낼 수 있다면, 여러분도 글 하나로 누군가에겐 소고기를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믿는다.
출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 / 생각의 길 / 2015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 / 김영사 / 2017
대통령의 글쓰기 / 강원국 / 메디치미디어 /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