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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Oct 21. 2024

그녀의 절대 법칙은 오늘 드디어 깨지는 걸까? (1)

뭐? 롯데가 시작부터 4점을 낸다고?

 친한 누나 한 명 있다. 그녀를 MJ라고 칭하겠다. MJ 누나는 성격 좋고 사람도 괜찮은데,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어떤 일이든 잘 풀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남에겐 금방 해결되는 일이 누나에게만 가면 유난히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숨만 쉬면 처리될 일이, 누나한테만 가면 육체적 고통을 한 달 정도 해도 처리가 어려운 일이 된다고 볼 수 있겠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다. 이 단점은 누나 스스로 인정했다. 이쯤 되면, 전생에 어떤 죄를 지었을까? 얼마나 큰 업보를 가졌기에, 지금까지 이렇게 고생하는지…….      


 MJ 누나의 특징이 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야구에도 적용되더라. 이건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이 누나와 야구장을 처음으로 갔던 시점은 2022년 7월 24일, 기아와의 경기 날이었다. 이날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23:0으로 패배로 KBO 한 경기 최다 득점 차 기록 경신.     


 이렇게만 요약해서 그렇지, 이날은 정말 엄청났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기아는 안타 26개, 롯데는 안타 5개를 해냈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기아 응원가를 부르는 진귀한 장면도 연출되며, 그날만큼은 홈과 원정 모두가 기아 타이거즈였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출처, KBO


 사실 직관을 자주 하면 누구나 패배를 목격하게 된다. MJ 누나도 그런 경우 중 하나가 아니냐? 그럴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사건을 더 언급하겠다.      


 직장 직원들과 MJ 누나가 야구장을 갔던 2023년의 이야기다. 경기 도중에 비가 와서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다. 차라리 취소되었다면 다행이었겠다만, 재개되고 만다. 하필 그날 막상막하(?)였다고 하더라. 12회까지 갔다고 하니 말이다. 결국엔 지고 만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비가 와서 중지된 시간과 12회 연장까지의 경기를 합치니 오후 11시였다더라. 경기는 길어지고, 심지어 패배하고…….     


 그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가 있다지만, 더 듣지 않았다. 내가 스트레스받을까 봐. 일단, 23:0의 패배, 오후 11시 경기하고 패배 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는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바로 MJ effect다. MJ 누나가 야구장에 가면 발생하는 절대적인 법칙 2가지로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경기 시간은 무한정 길어진다.

 2) 어떻게든 지고 만다.     



 하지만, 단 두 가지 사례만으로 MJ effect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엔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MJ 누나와 나는 뭉쳤다. 바로 사직야구장에서 말이다. 그날은 2024년 4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였다.      


1회 말     


윤동희가 중견수 안타로 게임 시작했다. 선두타자가 출루했다. 

사직 아이돌이란 별명을 가진 프로 2년 차 김민석. 드디어 복귀했다. 하지만 삼진을 당했다. 윤동희는 2루 도루에 성공했고.

레이예스 차례가 왔다. 때렸다. 날아갔다. 저 멀리. 설마 잡히려나? 아니었다. 진짜 저 멀리 날아갔다. 우측 담장을 넘어간 홈런!!! 스코어 2:0으로 기분 좋게 시작한다.

이후 전준우, 노진혁의 연속 삼진으로 이닝 종료되었다.

2점을 따냈으나, 삼성의 선발 투수 코너의 삼진 3개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2회 말     


이학주 차례다. 타격했다. 우익수가 가만히 서 있길래, 당연히 플라이 아웃이구나 했다. 그런데 갑자기 빠르게 우측으로 달리기 시작한 거다. ??? 이거 뭐지 ??? 그러다 갑자기 공이 떨어졌고, 우익수는 이를 놓쳤다. 그 사이 이학주는 달리고 또 달려서 3루에 도달했다. 낮 2시 경기였기에, 선글라스를 꼈지만 그럼에도 수비가 쉽지 않았던 거 같다.

이후 최항의 우중간 안타로 이학주가 홈으로 들어왔다. 스코어 3:0     


3회 말     


사직 아이돌, 김민석이 결국 중견수 뒤를 넘어가는 안타를 만든다. 무려 3루타다. 첫 타석은 아쉬웠지만, 두 번째 타석은 참 마음에 드는데?  

레이예스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그도 알았던 걸까? 2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지나는 중견수 앞 안타를 만든다. 스코어 4대 0. 곧바로 도루까지 성공한다. 레이예스……. 왜 이제야 롯데에 온 거야……? 앞으로 종신계약뿐이야.

그러나 다음 타석이었던 전준우, 노진혁은 또 삼진이다. 아니, 연속 삼진은 너무 하잖아!

이학주가 안타를 때렸으나, 다음 타석이었던 손호영의 공이 하필 유격수 손으로 들어가는 직선타가 되어버리네? 이닝 종료다. 하, 직선타는 아쉬웠지만, 그래도 4대 0이다. 이기고 있으니 다행일 뿐.     


 

기분좋으면 이곳저곳 돌아다니시는 조 단장님


4회 초     


삼성 라이온즈엔 구자욱이 있다. 참 잘생겼다. 키도 크다. 야구 잘하는데, 외모까지 갖추니 좀 많이 부러운 녀석이다. 그런데, 유독 롯데에 강하다. 그래서 좀 짜증 나는 선수다. 하필 또 안타를 친다. 그리고 김재혁도 3루타에 성공하며, 구자욱은 홈으로 들어온다. 이후 김영웅을 볼넷으로, 1루로 보내며 위기가 형성되었지만, 2아웃 상황에서 삼진까지 잡아내며 1점을 내준 걸로 잘 막아낸다. 스코어 4대 1     


6회 초     


2번 타자, 김현곤의 안타.

이후 구자욱이다. 아까도 말했다. 외모도 좋은데, 야구도 잘하고, 거기다 롯데에 유독 강하니 짜증 나는 녀석이다. 한 번 더 말하는 건 결코 부러워서가 아니다. 그런데 홈런을 쳤다. 우측 담장을 넘기는 2점 홈런. 안 그래도 좋아하지 않았는데, 좀 더 싫어졌다. 젠장. 이럴 거면, 모든 걸 다 가지지 말라고……. 스코어 4대 3이다.      

삼성의 잘 생긴 남자, 구자욱, 출처 스포츠서울


6회 말     


안타, 볼넷으로 노아웃 1, 2루 상황.

최항이 번트를 대고자 했다. 그런데, 공이 뒤로 빠진다? 이게 그 유명한 와일드 피치. 덕분에 우리 주자들은 2, 3루까지 이동한다. 개이득? 최항은 자신 있게 타격한다. 유격수 앞으로의 안타……. 아니, 아웃인가? 유격수가 이를 놓치며 중견수 앞까지 흘러간다. 안타가 된 거다. 덕분에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며 스코어 5대 3.

정보근 타석이다. 최항 대신 대주자 황성빈은 2루 도루를 기본적으로 성공시킨다. 그는 도루의 신이다. 언젠가는 도루로 분명히 상을 받을 거다. 그만큼 빠르다. 나도 저만큼 달려보고 싶은데, 다음 생에나 가능하겠지? 정보근이 타격했다. 좌익수 손안에 빨려 들어가며 아웃! 그 사이 2루에서 3루로 뛰어가던 황성빈이 다시 2루로 간다. 좌익수가 황성빈을 아웃시키려고 2루로 공을 던졌다. 그리고 공은 샜다? 덕분에 황성빈이 살아남았다. 휴, 다행이다. 신이어도 실수할 때가 있지만, 오늘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윤동희의 차례다. 타격! 땅볼……. 그러나 갑자기 크게 튀더라. 3루수가 충분히 잡을 수도 있는 공이 3루수 글로브를 맞고 위로 튀는 불규칙 바운드가 생겼다. 그 사이 3루 주자는 홈으로 들어왔다. 황성빈은 3루로!

김민석이 윤동희에 이어 타격에 성공한다. 2루수를 지나 우익수 앞으로 향하는 안타. 황성빈이 홈으로 들어오며 스코어 7:3.

이후. 볼넷에 사구 등으로 2아웃 만루가 되었지만, 정훈이 때린 공이 땅볼이 되며 이닝 종료되었다. 매우 길었던 이닝 동안, 따라잡힌 3점을 그대로 돌려줬기에 매우 의미가 있었다.     

   

이곳은 사직, 사직야구장입니다.


야구 경기엔 팬들이 이입하고 개입할 수 있는 순간이 너무도 많다. 개인적으로 야구와 영화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종목이 구성되는 방식은 영화와 많이 닮았다. 영화와 야구는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쪼갤 수 있다. 영화에서 하나의 컷은 야구에서 하나의 투구와 유사하다. 영화는 카메라가 한 번 커졌다 꺼지는 조각들이 모여 신(SCENE)이 되고 그 신이 모여 작품이 된다. 야구는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는 순간 플레이가 시작되고 누군가의 글러브에 들어가는 순간(종종 경기장 안팎으로 사라지기도 하지만)들이 모여 이닝이 되고, 게임이 된다. 한 경기에 투수가 200개의 공을 던진다면, 200개의 갈등과 드라마를 품은 조각이 있는 셈이다.     

책 [야구잡썰] 30-36쪽     


 이날의 경기는 참 영화 그 자체였다. 잘 생겼으나 우리 팀을 잘 괴롭히는 능력을 지닌 배우(?)도 있었고, 사직야구장의 대표적인 아이돌(?)도 있었다. 배우 캐스팅은 100점 만점에 100,000점이다. 내 기준엔 완벽하다. 배우들이 각자의 역할까지 잘하더라. 삼진 잘 잡고, 안타 잘 때리고, 점수 잘 내고. 심지어 역전에 재 역전까지! 스토리마저 완벽했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 내가 좋아하는 롯데 자이언츠가 있었기에, 이 영화는 대박 영화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유심히 보던 MJ 누나는 이렇게 말하고 만다.


“야, 아직 몰라. 방심하지 마.”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스토리가 완성되려면 아직 3회가 남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영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MJ effect가 발휘되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      


 에이, 설마 MJ effect가 나타나겠어? 아니겠지. 아니리라 믿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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