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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Sep 04. 2019

잊고 싶지 않아, 펜을 들었습니다

출처, Pixabay


“할머니 돌아가셨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들었던 그 말은 나에게 있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아이구, 허리야! 다리야!’ 하던 할머니를 뵌 게 불과 이틀 전 아침이었다. 다른 문제는 없었다. 분명히 건강하시던 분이었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잠시 병원에 입원하신 후, 하루 만에 의식불명이 되셨다. 담당의사가 나에게 전화해서 급박한 상황을 설명할 때도 나는 이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 내용조차 나는 믿기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연극이 아닐까? 어쩌면 나를 깜짝 놀라게 하려는 계획의 일부가 아닐까?’ 그 정도의 생각이 들 정도로 눈앞에 닥친 현실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출처, Pixabay


 장례식의 모든 절차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의 시신을 관에 모시는 과정을 지켜봤다. 나는 그 때 할머니가 살아계신 줄 알았다. 생전에 살아계셨을 때보다 더 생생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주무시고 계신 것 같았다. 깨우면 일어나실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끝내 깨울 용기를 내지 못했다. 빈소를 지키는 내내, 나는 할머니의 영정사진만 바라봤다. ‘계속 쳐다보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나는 그런 비정상적인 생각까지 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흔적들이 유골함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너무나도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 이후 진행된 이 모든 일들이 끝날 때까지도 현실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쉽지 않다. 나 역시 그랬다. 많은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유명한 수필가인 피천득 선생님도 그랬던 것 같다. 자신의 책 [인연]을 통해, 사랑했던 어머니를 보낸 일을 이야기 한다.        


 피천득 선생님의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와 같았다. 어린 시절 유치원을 도망치고 놀러 다닌 아들이 혹시 사라진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 사방팔방 찾으러 다니던 그런 어머니였다. 어느 날 밤, 어머니는 잠을 자지 않고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떠난 남편의 옷과 자신의 옷을 한 벌씩 짝을 맞춰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들의 옷은 구분지어서 따로 다른 곳에 정리했다. 그렇게 떠날 준비를 하시던 선생님의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셨다. 피천득 선생님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과정에 대해서 자세하게 글을 남겼다. 또한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덤덤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그 후 얼마 안 가서 엄마는 아빠를 따라가고 말았다.
- 피천득의 인연 98쪽 -        


 [인연]에서 언급한 어머니의 돌아가시는 과정보단 나에게 있어 이 한 줄의 문장이 더 와 닿았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저 한 줄의 문장은 덤덤하고 간결하다. 하지만 나는 슬픔을 비롯한 모든 감정이 다 함축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3년 전 할머니를 떠나보냈던 기억이 하나씩 떠올랐다. 장례식 이후에 느꼈던 감정까지 다시 되살아났다.      


출처, Pixabay


 장례식 이후, 학교에 복귀한 뒤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실에 앉아 있는 것조차 싫었다. 그래서 학교 수업을 듣지 않고, 도망쳤다. 그대로 집으로 갔다. 아무도 없었다. 다른 가족들도 일상으로 복귀하여, 집에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었다. 현관문 바로 앞에 할머니의 방이 있었다. 나는 그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 곳은 시간이 멈춘 듯 했다. 할머니가 정리해놓으신 옷, 물품 등이 다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방에 있는 모든 것들은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가 앉던 그 자리에 앉아보았다. 할머니가 이 자리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셨을지, 어떤 생각을 자주 하셨을지는 앉아 있는 것으론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단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자리가 영원히 빈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때서야 모든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이미 이 자리의 주인을 떠나보냈다는 것을, 그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다시는 원래 주인이 이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게 사실이라는 걸, 그 모든 걸 확실히 깨닫고 나서야 나는 울기 시작했다.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그 날 정말 많이 울었다. 죄송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대화를 제대로 나누지 않았기에. 내 자신에게 화났다. 의학을 배우면 뭐하는가? 정작 가족이 위기 상황이 되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말이다. 내 자신의 무력감에 대해 분노했다.  말하고 싶었다. 장례식에선 겉으로 울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정말 많이 울었다고. 단지 이 현실을 믿을 수 없어서 밖으로 표출되지 않은 것이라고. 보고 싶었다. 그냥 보고 싶었다.

      

 피천득 선생님도 어머니를 보낼 때 많이 울었다. 하지만 그는 울면서 어머니를 떠나보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은 그 시절의 어머니를 글로 남겨서 계속 기억하고자 했다.      


 엄마와 나는 숨기내기를 잘하였다.

 엄마와 나는 구슬치기도 하였다.

 엄마는 새로 지은 옷을 내게 입혀 보는 것을 참 기뻐하였다.

 밤이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마당에 내려가 별 많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엄마는 나에게 어린 왕자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

 나는 엄마 같은 애인이 갖고 싶었다.

 엄마 같은 아내를 얻고 싶었다.     

 - 피천득의 인연 98 ~ 101쪽-     


 할머니 방에서 한참 울고 난 후, 나는 할머니를 떠나보냈던 그 순간들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이 당시에 피천득 선생님의 책을 읽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글을 썼을까? 쓸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싶지 않아서다. 할머니와 보냈던 추억들, 할머니에게 미안했던 기억, 할머니를 보낸 그 순간들은 계속 기억하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잊을 수도 있다. 난 그것이 두려웠다. 이 기억들을 지금 남기지 않으면 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그래서 울면서 글을 썼다. 쓸 때마다 눈물이 났다.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남겨 놓은 글과 [인연]이란 하나의 계기 덕분에 나는 할머니에 대한 생각을 금방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출처, Pixabay


 할머니를 보낸 이후로, 나는 나의 기억을 최대한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로 다짐하게 되었다. 나의 꿈 중 하나가 작가다. 그러나 정말 만에 하나 작가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의 소중한 추억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번에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그 다짐을 새겨볼 수 있었다. [인연]은 어머니의 이야기 뿐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도 언급되어 있다. 딸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 일상적인 생활 이야기 등등 소박하고 간결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모두 다 읽기 쉽고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내용들이다. 읽으면서 나는 피천득 선생님처럼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은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선생님처럼 모든 삶을 글로 남기는 것은 정말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어쩌면 선생님도 까먹지 않고 추억하기 위해서 계속 글을 써내려간 것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는 더 열심히 글을 쓰고자 한다. 더 다양한 내용으로 글을 쓸 생각이다. 할머니뿐만 아니다. 앞으로는 나의 부모님, 나의 친구들, 나의 지인들, 내가 겪고 보고 듣고 느끼는 그 모든 삶을 최대한 기억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설령 잊더라도 내가 남긴 글을 보고 떠올리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잘 썼던 못썼던 일단 쓰고자 한다. 일단 쓰는 게 중요하다는 걸, 할머니를 통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잊기 싫어서 오늘도 펜을 잡는다.     


 Ps. 할머니, 보고 싶습니다.          


참고자료
인연, 피천득,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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